하얗게 웃는다, 라는 표현은 (아마) 그녀의 모국어에만 있다.
아득하게, 쓸쓸하게, 부서지기 쉬운 깨끗함으로 웃는 얼굴. 또는 그런 웃음.
너는 하얗게 웃었지.
가령 이렇게 쓰면 너는 조용히 견디며 웃으려 애썼던 어떤 사람이다.
그는 하얗게 웃었어.
이렇게 쓰면 (아마) 그는 자신 안의 무엇인가와 결별하려 애쓰는 어떤 사람이다.
처음 읽고서는 좋았고, 옮겨 쓰면서는 의문이 들었다.
'너'와 '그', '지'와 '어'의 미묘한 차이일 뿐인데, 의미가 달라졌다고. 작가와 묘사한 것과 같이 차이가 느껴졌다고 생각했다면, 정말 그 미묘함이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혹은 작가가 그리 말하니 그런 듯해 보이는 것일까.
무엇이 먼저일까.
무엇이 먼저이든 간에, '하얗게 웃었다'는 표현은 참 예쁘다. 우리 모국어에만 존재하는 표현이기도 할 테고, 아마 표정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색일 수도 있겠다.
이 곳에 와서 그녀는 들었다.
노르웨이 최북단에 사람들이 사는 성이 있는데, 여름에는 하루 스물네 시간 해가 떠 있으며 겨울에는 스물 네 시간이 모두 밤이라고. 그런 극단 속에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그녀는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이 도시에서 그녀가 통과하는 시간은 그렇게 흰 밤일가, 혹은 검은 낮일까?
묵은 고통은 아직 다 오므라지지 않았고 새로운 고통은 아직 다 벌어지지 않았다. 완전한 빛이나 완전한 어둠이 되지 않은 하루들은 과거의 기억들로 일렁거린다. 반추할 수 없는 건 미래의 기억뿐이다.
흑백 논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명확해지기보다는, 그 양측을 인정하고 그 모호한 경계에 서 있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경계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한 발 정도를, 한 쪽에 담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일에 대한 감정도, 어떤 사람에 대한 감정도, 그렇게 조금씩 스며들게, 물들어가도록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일에 빠지면, 그 사람에 빠지면 아주아주 오래 갈 것 같은, 그런 감정이 들수록 더욱 조심스럽게. 이미 훅 빠져 있는 듯해도, 생각만큼은 여전히 경계에 머무는 척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글과는 조금 다른 맥락으로 빠진 것 같지만, 그렇기에 온전히 행복으로 가득찬 하루도, 온전히 어둠으로 가득찬 하루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에 과거의 순간들이 끼어들지 않고, 온전히 현재, 지금 이 순간의 감정만으로 온종일 잠겨 있을 정도의 강렬함을 갖기란 쉽지 않으니, 그런 하루들에는 과거의 기억들이 찾아와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가기도 하고. 그저 어떤 순간의 감정만 전염시키고 가기도 하고. 원하든, 원치 않든 그렇게 찾아와 일렁거린다.
현재를 산다. 과거와 달라진 현재를 산다.
그것을 잘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현재에서 그 변화를 자각하게 되는 그 순간에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과거를 보고, 느낀다. 그리고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언젠가 지금의 이 순간도, 과거의 기억으로 남게 될 테니. 때로는 미래에서 볼 현재가, 행복감을 안겨줄 기억이 되었으면 해서 현재에 더욱 충실하게 되기도 하고. 과거를 보는 순간, 변화를 실감하는 순간에 있어 그 변화에 만족감을, 행복감을 느끼고 싶어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기도 한다.
사실 전자의 경우에는, 현재의 행복감으로 너무나 충만하여 미래의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 따위를 할 겨를이 없는 상태일 때가 대부분이므로.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모두 공존하는 그런 하루는, 사실은, 그 어느 쪽으로든 '완전함'과는 거리가 멀었을 테다. 낮이 24시간인 하루가 존재하듯이, 밤이 24시간인 하루가 존재하듯이, 낮과 밤이 비슷하게 존재하는 하루도 존재하고, 그 차이가 미묘한 하루도 존재하겠지. 지역에 따라, 계절별로 차이가 존재하긴 하나 그렇게까지 극단을 달리지 않는 경우도 있을 거고.
어느 지역에 위치해서, 어느 계절을 보내고 있는 걸까.
그 계절의 주기는 어떤 요인에 의해, 어느 정도로 변화할까.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무엇일까.
회복될 때마다 그녀는 삶에 대해 서늘한 마음을 품게 되곤 했다. 원한이라고 부르기엔 연약하고, 원망이라고 부르기에는 얼마간 독한 마음이었다. 밤마다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이마에 입 맞춰 주던 이가 다시 한 번 그녀를 얼어붙은 집 밖으로 내쫓은 것 같은, 그 냉정한 속내를 한 번 더 뼈저리게 깨달은 것 같은 마음.
그럴 때 거울을 들여다 보면, 그것이 그녀 자신의 얼굴이라는 사실이 서먹서먹했다.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같은 죽음이 그 얼굴 뒤에 끈질기게 어른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린 적 있는 사람을 무람없이 다시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그녀가 삶을 다시 사랑하는 일은 그 때마다 길고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언젠가 반드시 나를 버릴 테니까.
내가 가장 약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돌이킬 수 없이 서늘하게 등을 돌릴 테니까.
그걸 나는 투명하게 알고 있으니까. 그걸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어떤 쪽이 더 나은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삶에게 버림받은 기억이 없어서, 언젠가는 버림받겠지 하는 두려움이나 공포 없이 그러한 것에 대한 자각조차 없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모든 것을 바쳐 열렬히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 언젠가는 반드시 버림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과연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로 전심전력을 다하는 사람.
반면, 이미 버림받았기에 회복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을 뿐더러 그 상처의 자극이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거나, 상처의 기억까지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아서 '언젠가는 버려질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 그래서 다시금 버려진다 해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정도만, 마음을 주고, 사랑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
과연, 그 어느 쪽이 더 현명한 것일까.
현명하다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지. 원한다고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순수한 사람은 그 경험을 겪어보지 않는 이상, 그 두려움의 크기를, 그 상처를 견디는 시간을 아마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고, 이미 겪은 이는, 아무리 전심전력을 다시 다해 보려 한다 한들, 상처받았던 기억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지지는 못할 것이니.
어찌 되었든 인생은 또 흘러가겠지. 생각은 또 변화하겠지. 그에 맞춰서 인생은 또 흘러가겠지. 그러다 또 버림받을지도 모르지.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되고, 내 인생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그렇지만 내 인생만, 내 마음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자 살아가는 재미가 되는 날들이 있었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말을 모르던 당신이 검은 눈을 뜨고 들은 말을 내가 입술을 열어 중얼거린다. 백지에 힘껏 눌러쓴다. 그것만이 최선의 작별의 말이라고 믿는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야기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난 언니에 대한 이야기다. 태어난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그런 작고 조그만, 마치 달떡처럼 하얗던, 아기에게 엄마가 할 수 있었던 전부는 죽지 마라 제발, 이라고 되풀이하는 일뿐. 작가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당신이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 그 작고 하얗던 아기와 작별할 수밖에 없었던, 역시나 어리도 여렸던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작은 것을, 묻어야 했던 아빠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 나와, 눈을 뜨자마자 들었던, 그리고 어쩌면 세상에 나와 들었던 말의 전부였던 '죽지 마라, 제발'을 듣던, 당신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사실 아마 이 구절이 '흰'을 홍보할 때 가장 자주 쓰였던 구절이 아닐까 싶다. '죽지 말아라, 어떻게든 살아라'하는 글들은 워낙에 많지만, 한강의 글에는 그런 뻔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서. 오히려 그 절절함과 절실함이 느껴지는 기분이라 독특한 형식의 이 글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저 세상의 이들에게 건네는 손길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구나.
읽다 보면 그 상황이 그려진다. 어떤 목소리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표정으로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말했을지. 그게 결국에는 작별 인사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그 풍경을 그리다 보면, '흰'이라는 제목과 어쩌면 그리 잘 어울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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