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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들/책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의 미소

요새 한국 소설을 너무 안 읽었다. 읽고 싶은 건 많은데, 빌려 보려니까 도통 도서관에 남아 있질 않다. 나의 로망 중 하나는 서점에 가서 사고 싶은 책 다 사고 오는 것. 사실 옷이나 화장품 같은 것도 사고 싶은 것 다 사고 오면 재밌겠지만, 그것들 들춰 보는 것보다 책 제목이랑 소개 들춰 보는 게 더욱 재밌다는 생각은 한다. 사고 한 번밖에 안 읽는 데다가, 한 번에 왕창 사 오면 책 읽는 데에 질려 버릴 것을 아니까. 그래서 그다지 합리적인 소비가 아님을 알기에 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영화, 보고 싶은 공연을 쌓아 놓듯이 보고 싶은 책도 많이 쌓아 두어서. 그냥 그런 책들 실물을 서점에서 만나기만 해도 재미있고. 문득 쓰다 보니까 왓챠처럼 책에도 나름 별점을 매기고, 내가 읽어 온 책들을 쌓을 수 있는 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 추천 도서도 뜨고, 주변인들과의 취향 매칭 퍼센트도 알 수 있고. 하여튼 그게 문제가 아니라 쇼코의 미소를 읽고 썼던 글을 보니, 한국 소설이 또 읽고 싶어졌다. 그냥 한국 소설 말고 좋은 한국 소설. 한국 소설을 읽을 때만큼 마음이 찌릿찌릿한 때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겉보기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쇼코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내밀한 우정을 쌓는지 알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속을 열어 보이지 못하는 대신 살을 부딪치며 만날 필요가 없는 외국인에게 외국어로 편지를 써서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자신의 삶으로 절대 침입할 수 없는 사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이어야 쇼코는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속내를 드러내는 게 두려웠었다. 솔직한 내 마음을, 솔직한 내 생각을 드러내는 게 늘 두려웠기에,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 충실한 사람이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까운 사람에게 '절대로'라는 표현을 쓸 만큼 마음을 닫고 벽을 치는 건 아니었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도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기란, 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점차 커 가면서, 관계에 대한 불만보다는 믿음이 더 큰, 오래 보지 않아도, 오래 연락하지 않아도 언제든 달려가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는, 함께 오랜 시간을 붙어 지내며 말이 아니라 몸으로, 직감으로,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체득한, 그런 관계들이 생겨 나면서, 그런 관계들이 늘어나고 유지되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나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여전히 나만 알고 있는 나의 부분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열지 않은 부분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과거보다는 쉽게, 그리고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들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변화해 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나에게 먼저 마음을 열어 주고, 또 그런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이들이, 나를 그렇게 변화하게끔 만들어 준 이들에게 늘 고맙다.

 

"네가 그리웠어."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리웠었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사실 쇼코는 아무 사람도 아니었다. 당장 쇼코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내 일상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쇼코는 내 고용인도 아니었고,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대학 동기도 아니었고, 가까운 동네 친구도 아니었다. 일상이라는 기계를 돌리는 단순한 톱니 바퀴들 속에 쇼코는 끼지 못했다. 진심으로.

 

쇼코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쇼코에게 내가 어떤 의미이기를 바랐다. 쇼코가 내게 편지를 하지 않을 무렵부터 느꼈던 이상한 공허감. 쇼코에게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정신적인 허영심.

그런 관계가 있다. 나에겐 그 사람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별 의미 없다고.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든,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뭘 해서 먹고 살든, 관심도 없고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는 관계. 그러나 상대도 동등하게 나에게 무관심한 게 아니라, 상대는 나를 자주 생각하고, (나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거나 함께하고 있지 않는 내가 무엇을 할 지 궁금해 하거나) 잊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관계. 아니, 생각이라기보다는 기대하는 관계. 그러니까 결국은 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내가 '갑'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 관계.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보다 덜 잘해 주고, 때로는 일부러 더 엇나가고, 기본적인 예의도 가끔은 어기면서도 '그래도 괜찮다'라고 합리화하는. 그렇게 해서 상대도 나에게 동등하게 관심이 없어질 정도로 정이 떨어졌으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직 일말의 관심이 남았기를 기대하는 관계.

 

그러나 사실은 알고 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계산하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닌 관계는 아니라는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게 정상인데, 이미 나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점에서 인정하기 싫은 것뿐. 그리고 특히 누군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철저하게 '을'이라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그 다른 사람이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함께 강렬해진다. 나에겐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에게는 내가 의미 있는 사람이기를.

 

그러나 그것조차 아니었음을 서서히 느끼게 되면, 거기에서 오는 공허감은 견디기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 사람을 가벼이 여기고 그  사람에게만큼은 내 멋대로 굴고 싶어도 그 사람마저 나를 좋아해 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은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감정을, 쇼코의 미소는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이 구절대로, 굳이 연인 관계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는 감정이었다.

 

PS. 관계에 갑을을 나누는 게 싫지만, 여전히 어떤 관계든 더 좋아하는 쪽과 덜 좋아하는 쪽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관계에 있어 서로가 서로를 동등하게 좋아하면 참 좋을 텐데.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온도도, 방향도 다르다는 것을 매 관계에서 실감하게 되고, 그게 참 지긋지긋해.

 

이 때의 내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 기억한다. 결국 저랬던 많은 관계들이 짧게 끝이 났다. 내가 놓았지만, 그렇다 해서 완전히 놓지도 못한 관계들의 연속이었다.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이상 흥미롭지도 않았고, 관계의 어긋남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알았기에, 그렇게 변화해 가는 나를 실감했던 순간, 관계의 방향이 어긋났다는 느낌보다 그렇게 변해 버린 나를 보는 게 슬펐다. 그렇지만 다행이었던 건, 내가 지금 슬프고, 왜 슬픈지를 타인에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점.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런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는 게 너무나 다행이었다.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 말을 듣고 공감해 줄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손을 뻗으면, 언제나 손을 흔쾌히 잡아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저 그 존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였는데, 그들은 늘 그 이상을 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무너졌던 이후로 훨씬 더 견고해질 수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서,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따뜻하고 진심 어린 시선을 인식할 수 있게 되어서,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게 되더라. 원래 나의 모습을 이제 다시 회복했다고 해야 할까. 조금 흔들릴 때마다, 생각했다. 어떻게 쌓아 온 건데, 이렇게 무너뜨릴 수 없다고. 그 온기를 오래도록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 쇼코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겠구나, 싶다.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렇게 박혀 버린 삶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맨얼굴을 들여다 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삶이 잘 나가는 건 아니더라도, 삶에 대한 애착이 있고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괴롭지 않다. 그러나 삶이 괜찮더라도, 나쁘지 않더라도, 삶에 대한 어떠한 애착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괴롭다. 내 인생에 대한 애착이 너무나 강하고, 아주 에너지가 흘러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인생에 대한 애착을, 의지를, 그냥 다 놓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스치듯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저렇게 살아서 뭐해, 하고 비난의 눈길을 보낼 수는 있겠지만. 그러니까 나는 더 잘 살아 봐야지, 하고 열정을 불태우는 게 아니라, 이유 없이 덩달아 무기력해질 테니까. 쇼코를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라는, 쇼코를 회피하는 소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