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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오래 꾸었던 꿈

중학생 때부터 방송국에 입사하고 싶었다. 방송국의 특정 직업이 멋있어 보여서, 그 직업을 하고 싶어서 방송국에 가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방송국 자체가 나의 로망이었다. 일단 방송국이라는 전제를 깔아 두고, 그 안에 무슨 직업이 있나, 그 중 뭘 하면 좋을까를 고민했고 그렇게 찾은 직업이 왜 하고 싶은지 고민했다. 조금 이상한 인과 관계였다. 이유가 있어서 결정을 내린 게 아니고, 결정을 내리고 나서 이유를 끼워 맞추려고 노력했으니까. 그렇게 중1 때 방송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고등학교 때 PD가 되고 싶다로 직종은 바꾸었지만, 여전히 방송국에 입사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6년 동안 같은 꿈을 유지하다니. 지금의 내가 봐도 좀 신기한 일이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방송국에 꽂혀서 갖게 된 꿈이었지만,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꿈을 지탱하는 이유들은 늘어만 갔다. 하고 싶다는 마음도 커져만 갔고. PD님들께 메시지도 보내고, 꿈과 관련된 고민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렇게 확고한 꿈이 있다니, 부러워.'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PD가 되고 싶다는 꿈은 굉장히 확고했었다.

 그렇게 확고했던 꿈은 언론 관련 학과가 아닌 경영학과를 진학하면서 깨졌다. 글쎄, 굳이 깨진 이유를 경영학과 진학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 같기도. 20살이 되어서야 고등학생 때 PD님께 메일을 보냈을 때, 고등학생 때부터 PD라는 하나의 직업만을 꿈꿀필요는 없다고, 넓게 생각하면 좋겠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PD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실감하게 되었고, 정말 내가 PD를 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도 의심스러워졌다. 과마다 배우는 것도 다르지만, 만나는 사람들의 특성도 다를 수밖에 없어서 과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지면서 하고 싶은 일은 더 모호해져만 갔다. 물론 과 안에서도 진리의 사바사는 통하기 마련이나,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만난 사람들로 일반화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랬다. 다른 과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묘한 톤 차이가 있었다. 나에게도 돈은 물론 중요한 가치였지만, 돈이 1순위의 가치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솔직해지자면 1순위의 가치였던 적은 없었는데, 내가 너무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런 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잘 모르겠다로 마음을 바꿨다. 삶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도 흔들리고,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뭘 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은 더 많아졌던 것 같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지 않다. 어렸을 땐 그 직업군의 사람에게 메일까지 보내가면서 열정을 불태웠으면서, 오히려 지금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니. 지난 2년 간은 하고 싶은 일+전공을 엮어서 이런 저런 직업을 뭉뚱그려서 생각했고, 6년 간 꿈꿔 왔던 꿈은 내려 놓고 지냈었지만 요즘은 그 꿈이 다시 살아난 것 같기도. 그렇게 오랫동안 꿈꿔 왔던 꿈인데, 원서 한 번은 내 봐야 하지 않나 싶더라. 진짜 하고 싶은 일이었잖아, 그 직업이 나에게 맞는 것이든 아니든 확신이 있든 없든 한 번은 지원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요즘 다시 들었다. 오랜 짝사랑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고백은 해 봐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 걸까. 여전히 방송국에 입사한다는 상상을 하면 설렌다. 모르겠다, 지금 입사 지원서를 쓸 것도 아닌데 이 글을 왜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지금 당장 누가 나에게 뭘 하라고 하는 것도, 당장 취업 전선에 뛰어들 것도 아니고 다음 학기 시간표도 안 짰으면서 왜 이런 넋두리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방금 전까지 하고 싶은 게 넘쳤다가 갑자기 다 하기 귀찮아진 건 또 무엇 때문인가 생각하고. 그냥 사는 거지 뭐, 답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