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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721 무너진 마음을 기댈 곳

 나의 기복을 보는 기분은 어땠을까,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을 때, 정말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것인지 궁금했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생각했다. 나의 걱정과 고민을 함께 나눌 생각은 없었다. 나의 우울을 나누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고, 함께 슬퍼해 주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지금 곁에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곁에 있어 주겠다고. 그냥 그 일상을 함께해주겠다고, 가끔 맛있는 거 사 먹고, 가끔 놀러가고, 가끔 연락하고. 그냥 지금 이대로, 변하지 않고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그 이상을 바라지는 않았다. 내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문제이고, 기대고 싶지도 않았고, 혼자서 잘 해결해 나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그래도 혼자 하는 게 벅찰 때면, 벅찬 것이 아니더라도 외로울 때면, 포기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면,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런 날에, 아무렇지 않게 곁에 있어주면 될 일이었다. 그런 날이 아니더라도, 그냥 일상에서 함께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딱 그 당연한 몫만 해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다. 어떤 위로의 말을 골라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친구로서 할 수 있는 그 평범한 일들을 앞으로도 함께하자고, 같이 그렇게 잘 보내 보자고, 그 별 거 아닌 말들만 던져 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 말이 듣고 싶었다. 그냥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메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와 함께, 어떤 하루를 보냈든, 그 하루의 마지막에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그래도 조금은 살 만한 기분이 들 테니까. 이미 외로움을 직감한 것일 테다. 학교는 외로웠다.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길었고,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해야 했고, 편안하지 않은 장소에서 끊임없이 낯선 사람들을 마주해야 했다. 어색하게 아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런 마주침을 줄이기 위해서, 늘 누군가를 의식하는 기분이었다. 그 불편함을 끼얹는 게 싫었다.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수업을 듣고, 할 일을 하는 것이야 어떻게든 하겠지만. 그 모든 관계가 힘들었다. 힘들다고 인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중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도, 가끔은 무너진 나를 보여줘도, 아무렇지 않게 보듬어줄 사람들인 것을 안다. 그런 관계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거나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정도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너진 나를 보여주는 것은 어렵고, 괜찮은 척하고 조금은 속상한 마음을 품고 밤을 보내는 것이 훨씬 쉽다. 요즘의 키워드가 불신이라 말했을 때, 나는 믿어도 된다고, 변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던 다정한 사람들을 기억한다.

 

 다정한 사람들 속에 파묻혀서, 그렇게 다정하지 못한 나를 탓하면서, 지냈다.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기에는 요즘의 마음 상태가 좋지 못했다. 지금의 마음 상태는 좋지 못하니까, 요즘은 조금 받는 쪽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다정함과 따뜻함을 퍼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퍼붓는 것까지는 타고난 천성 덕에 못하겠지만, 적어도 받기만 하는 사람은 아닐 수 있겠지. 그 정도의 믿음은 있었다. 이 시기의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받기만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더라도, ‘, 뭐야?’ 하고 돌아설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그렇게 마음이 무너진 나를 보면, 어떻게든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해 주려고 애쓸 것이라는 것. 그 위로가 마음에 와 닿든, 와 닿지 않든, 그 애쓰는 모습 자체들이 다시 회복되는 데까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

 

 사실 이렇게 말해 놓고서, 받기만 하는 건 또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금세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게 되어 버렸다. 사실은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그렇지만 끝도 없이 징징거린다 해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징징거리는 것 자체가 편한 사람도 아니고. 어차피 그 순간만 지나고 나면 멀쩡해지고, 다음날에는 전날의 자신을 수습하고 설명하는 것을 더 어려워할 것인데. 그 순간을 버티기 힘들어서 마음을 다 털어놓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음날의 나를 생각해. 예전에는, 그 순간의 위로가 너무나 간절해서 쉽게 말하곤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있는 그대로 죽 늘어놓곤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음날을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사람과의 얽힌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오로지 나의 상황에만 빠져서 이야기를 늘어놓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다시 그런 시기가 왔다. 모두가 행복하고, 특별하게 오늘의 나만 힘들어서 힘든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진심으로 들어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너무나 쉽게 꺼낼 이야기들을, 다들 쉽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을 아는데 특별한 일도 없이 무너진 마음을 꺼내 보일 자신이 없었다. 혹은 너무나 필요한 위로를 건네줄 것을 알아도, 내가 그동안 한 게 있는데, 그 밤의 위로가 간절하다고 그렇게 사람 마음을 이용해 먹어도 되나,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