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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429 두 사람

 아주 작은 심술이 났다. 아주 작은 심술에는, 아주 작은 복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복수라고 볼 수도 없는 아주 작은 복수를. 확실하지 않은 관계에서는 너무나 많은 것을 의심하게 된다. 그 모호함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확정적인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내 마음은 더 모호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술나는 마음을 어쩔 수는 없었다. 나에게만 다정하고 특별한 말투를 보여주길 바랐고, 그 다정하고 특별한 이야기들은 나와만 나눴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게 모두와 나누는 대화라 생각하면 심술이 났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중 너무나 많은 부분을 나눴고, 그렇게 많은 것을 나눈 사람은 없는데. 그와 달리, 그쪽은 다른 이들과도 너무나 많은 것을 나누고 있다 생각하면 조금은 심술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정도 촉은 있었다. 아마 그쪽도 이렇게 많은 것을 나누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 밀어냈다 하는 쪽은 나이면 나였지, 그쪽은 아니라는 것.

 

 너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는 말투와 그에 대해 너무 친절하고 귀여운 답변을 다는 상대의 반응에 심술이 났다. 아주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상적이지 않은 말들을 안다. 상대가 나를 귀엽게 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들이 있다. 상대의 뻔한 답을 바라고 하는 말들이 있고, 상대의 뻔한 반응을 바라고 하는 말들이 있다. 그런 말들을 안 하는 게 아니고, 그런 말들을 고르느라 보낸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더 심술이 났던 것 같다. 친구 사이에 못할 말이야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짜 친구 사이에 할 말도 아닌 걸. 그건 나의 특수한 케이스이기에 일반화해서 할 말은 아니지만, 그냥 그 감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하루면 지나갈 마음이었다. 그 이후에 말이 하고 싶어지면 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사실 그쪽에만 뭐라 할 건 아닌 게, 끊임없이 마음을 재고 있는 건 내 쪽에 가까웠다. 그 생각을 하면서 나는 여전히 다른 이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 돌아왔고, 그러니까 나에게 연락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주 미묘하게 생각이 났다. 두 사람의 장점은 너무나 달랐고, 그 장점은 모든 단점을 가려줄 만큼 거대한 것은 아니라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 두 장점은 나에게 모두 필요한 부분이었다.

 

 하나는 나와 취향이 너무나 잘 맞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무나 잘 나눌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나누는 게 너무나 중요한 사람에게, 그로부터 얻는 낙이 너무나 큰 사람에게, 그건 너무나 크리티컬한 장점이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즐길 때마다 자꾸만 생각이 났다. 너무나 많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나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버스에서 노래 들을 때, 좋아하는 장소를 생각할 때마다 생각이 났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보통 먼저 나누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 내가 이게 너무 좋아서 죽겠다는 감정만 전달해도 되는 사람이었다. 그 좋아서 죽겠다는 감정을, 그 감정에 빠져서 혼자서 온갖 말을 늘어놓는 내 이야기를 주접이라 생각하지 않고 재밌다고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자기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

 

 그 이야기는 때로는 흥미로웠고, 때로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가 어떻든 간에 설명하지 않아도 내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매일매일 좋아하는 게 새롭게 생겨났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떠들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자주 생기는 사람에게 그건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었다. 물론 요즘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나눌 사람들이 늘어 있었고, 그 관계들 속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잘 쌓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의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그저 넘어가는 게 아니라, 공감하고 들어주고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재미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다른 이의 장점은, 내 감정을 비교적 잘 읽고, 그때 필요한 다정한 말들을 해 준다는 거였다. 때로는 그 다정한 말들이 너무나 고마웠고, 너무나 때에 잘 맞아서 엉엉 울게 된 날도 있었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 말이 너무나 과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다정함과 세심함은 표현이 어려운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부분이었다. 굳이 많이 표현하지 않아도, 아주 작게만 표현해도 그 사람은 나에게 필요한 다정한 말들을 건네 왔다. 내가 한 일들에 늘 괜찮다고 말해 줬다. 내 기분이 상했을까 마음을 써 줬다. 먼저 미안하다 해 주고, 괜찮다고 해 주고, 다정한 말들을 해 줬다. 힘들지 않다고, 나는 이제 괜찮다고, 다 적응하고 아무렇지 않다고 늘 말했지만, 사실 아침마다 일어나는 건 여전히 힘들었다. 새벽을 뚫고 걸어가는 건 여전히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고, 진을 다 빼고 퇴근할 때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남들이 힘들겠다ㅠㅠ하는 말만큼 힘들지 않다고 느낄 뿐이지, 그렇다고 모든 게 가뿐하고 쉬운 건 아니었다. 매일 같이 힘들겠다, 그 소리를 들을 만큼 힘든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끔은 쉽지 않다고 징징거리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그 사람은 굳이 징징거리지 않아도, 힘내라는 말을 건네 줬다.

 

 내가 다정한 말들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그때 생각했다. 따뜻하게 입고 가라는 말에 엉엉 울었던 밤을 생각한다. 그 말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 사람은 내가 하는 많은 것들을 보고 있었고, 기억해 주고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로, 내 마음을 조금씩 생각하고 챙겨 줬다. 마음이 그러지 않을 때에도, 혹시나 마음이 그럴까 챙겨서 물어봐 줬다. 내 마음을 확정 짓지 않고 물어주는 순간들이 좋았다. 혹은 조금 돌려서 응원의 말을 던져 주는 게 좋았다. 내가 부담스럽지 않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 주려 하는 것도 고마웠다. 사실 고마운 것보다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미안할 일까진 아닌 것 같아 미안해 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었다면, 아마 나는 그 사람을 지금보다는 더 좋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그건 아마 일시적인 게 아닐까 싶었다. 일시적인 마음과 행동에 마음을 주기에는, 나는 너무나 불신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 연락을 끊었던 이유를 보려 다시 연락창에 들어가 봤는데, 왓챠를 자꾸 와차라 써서 그게 꼴 보기 싫어져서 연락을 끊었다. 아주 연락을 끊고 싶어지는 이유도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마음이 더 동한 건 후자라는 게 이상했다. 그냥 생각했을 때, 나에게 크리티컬한 장점은 단연 전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글을 쓰다 보니 왓챠를 와차로 쓰는 정도의 실수는 귀엽게 봐 주고 넘어갈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떻게든 내 취향을 맞춰 주려고, 나랑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게 눈에 보였고 그게 고마웠는데, 겨우 와차정도로 삔또가 상했으면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노력한다 해서 완전히 맞은 건 아니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다리면 오겠지. 먼저 할 말이 없으니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면 올 관계라 생각하니 먼저 하지 않게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