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이 아닌데 실제로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어김없이 생리를 한다. 그렇게 우울할 일이 아닌데, 우울하고 기분이 바닥을 치면 '아, 이건 다 호르몬 탓이겠구나' 생각하면 된다. 이미 기간 중이라, 지금 이만큼 우울한 것은 다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울고 싶었고 우울했다. 바닥을 치는 기분 속에서 누가 구제해 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전화를 걸어서 우울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누가 나를 다독여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서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괜찮다고. 오늘만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이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오늘만 지나면 괜찮을 것을 아는데, 오늘이 괜찮지 않았다.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자꾸만 입에 죽고 싶다는 말이 걸렸다. 그래서 누가 그냥 안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닥을 치는 우울의 시작은 나에게서 왔다. 사람이 왜 이렇게 못됐지, 싶었다. 요즘의 나는 왜 이렇게 자꾸만 선을 넘나. 무엇인가 주는 것도 없으면서 왜 자꾸 받기만을 바라나. 나는 자꾸만 선을 넘고 누군가를 존중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 싫어서, 그래서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상 거리를 두면 서운해할 사람들인 것을 알면서도. 어쩌면 거리를 둔다 해서 아무런 변화가 없을지도 몰랐다. 누군가와 거리를 잘 두는 사람도 아니면서.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세심하고 예민한 사람들도 아닌 것을 안다. 그건 그냥 나를 알아달라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나 너무 우울한데, 좀 알아달라는 몸부림. 오늘의 나는 위로 받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고, 차마 제대로 된 이유가 없어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 기분을 알지 못하고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밝고 강하고 가벼운 사람이 아닌데, 요즘의 나는 너무나 긴 시간 동안 밝고 가벼운 사람으로 살았다. 따뜻한 사람들이 필요했다. 나를 보듬고 따뜻하게 감싸줄 사람들. 너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결국은 통하게 되어 있을 거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들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던 말을 들어서 나는 예상치 못하게 감동을 받아 버렸다. 나는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많은 집단에서 너무나 오래 살아왔다. 별 일 아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게 중요한 일이 되었던 집단들. 별 일 아닌 이야기들이 주가 되었던 곳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너무나 열심히 들어주고, 반응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곳. 나는 그런 곳에서 너무나 오래 살았다.
다 때려치고 엉엉 울다가 날씨가 좋은 곳에서 혼자 오래오래 걷고 싶었다.
아무도 엉엉 우는지 모르겠지. 나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굴었다. 알아줬으면 했지만, 이 사람들은 뜬금없이 내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다. 궁금해 할 수는 있겠지만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별스럽지 않은 이유를 말하면 무작정 괜찮다고 위로해 올 것이다.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린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강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도대체 뭐냐고 물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모든 카톡방을 나가고 모든 사람들과 단절된 채로 딱 일주일 정도만 제주도 같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든 sns도 탈퇴하고 싶어져서 모든 인스타를 다 지우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걸리는 사진들과 글들이 너무나 많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에게 위로가 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사진들은 차마 지울 수가 없어서 남겨 두었다.
요즘은 나를 자꾸만 이해 받고 싶었다. 타인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나는 타인을 이해할 자신도 없고 이해할 의지도 없으면서 요즘은 자꾸만 이해 받고 싶었다.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다. 왜 그렇게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이냐고.
좋은 사람이 될 자신이 없어서 관계를 단절하고 싶어졌으면서도, 그 감정을 어디엔가 알리고 싶었다. 나 지금 이러니까, 누가 나 걱정 좀 해 줘라. 그런 의미였다. 그렇지만 직접적으로 나 너무 힘들고 우울하다는 말을 할 자신은 차마 없어서 나만의 방식으로 비비 꼬아서 무엇인가 하겠지. 그 비비 꼰 마음을 이해하기에 이 사람들은 너무나 짧은 시간 보았고, 긴 시간 본 사람들도 이 정도 비비 꼰 것은 이해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냥 다 모르겠으니, 나를 사랑해 줘. 그게 아니면, 그냥 내 곁에서 사라져 줘.
사라지면 버티지 못할 거면서 그게 무슨 소리야. 우울의 극치에 달하면 머리라도 바꿔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싶어진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이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냐고. 답은 너무나 명확했다. 사랑 받고 싶었다. 외롭냐고 물었다. 외롭지는 않은데, 그래도 사랑 받고 싶어.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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