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날에는 일기를 써야 한다. 요즘은 대체로 행복하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유난히 행복했던 날. 결국 행복은 사람으로부터 온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으면 인생은 행복해. 오늘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 생각 없이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호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호주로부터 온 전화에 지금 수업이라고 답장하자, 심심해 죽겠다며 음성 인식으로 기나긴 카톡을 보내왔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말이 또 되는 이상한 카톡들을 보면서 웃음이 났다. 참 너 같은 카톡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너무너무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딱 전화하고 싶은 타이밍엔 전화가 안 되어서 전화를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양껏 카톡을 했다. 우리는 요즘 서로의 고민으로 가득찬 카톡만 나눴는데, 오늘의 우리는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들로 가득 채웠다. 예쁜 하늘 이야기를 하고, 심심한 일상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었더니 반겨줬다. 편한 사람에게, 편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상한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 놓았고, 실컷 툴툴거렸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 없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어떻게 맞장구쳐야 할지 고민할 필요 없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관계. 신나게 잔뜩 전화를 하고 나서, 조모임을 하러 갔다. 그 전에도 아는 사람을 잠깐 우연하게 만났는데, 나에게 칭찬을 얹어 줘서 고마웠다. 잠깐의 칭찬에 잠깐 싱글벙글하는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조모임에 가서, 이제 조금은 적응되고 편안해진 것 같은 사람들이랑 조모임을 했다. 올해 목표는 일 잘하는 사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는데 아직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여전히 조모임은 조금 두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조모임은 조금 즐거웠다. 좋아하는 주제여서 즐거웠던 건 아니고, 내가 잘해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함께 하는 사람들을 조금 편하게 느낄 수 있게 되어서? 중간중간 장난을 던질 수 있는 분위기라 긴 시간 조모임을 해도 힘들지는 않았다. 사실 온종일 수업 듣고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상태라 힘들었던 건 맞는데, 마음은 신났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신나면 되는 거지! 그리고 조모임하다가 반가운 얼굴들을 또 만났고, 반가운 사람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잔뜩 카톡을 하면서 집에 왔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잔뜩 카톡을 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행복했다. 방에 드러누워 침대에서 카톡하면서 행복했다. 행복이 뭐 별 건가. 그냥 침대에 누워서 이렇게 사람들이랑 연락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데. 요즘 들어 매일 같이 생각한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거창한 게 아니라는 것. 지금껏 살아오면서 쌓아온 행복들은 앞으로도 아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행복들을 사랑할 수 있는, 자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었다. 그 정도의 시간적, 금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삶이면 된다. 많은 것을 바라고 싶지 않아. 내 인생에 행복을 안겨 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고, 그 사람들을 오래오래 지키면서 살고 싶다. 결국 사람이야. 무엇에서도 느끼지 못한 행복들과 성취감들을 안겨 주는 것은 사람이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고. 오늘 같은 밤엔 만들 수만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을 따뜻하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차라리 빵을 구워내는 사람이 되는 게 낫겠어. 사람들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건 맛있는 빵이 아닐까. 맛있는 빵을 구워 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온기와 행복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고 행복한 삶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맛있는 빵을 구워 내려면, 그만큼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 많은 시도도 해야 하고 매일 일해야 하고 막상 빵을 굽는 자신의 삶은 그렇게 따뜻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나는 빵을 구워 내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니까, 빵집을 운영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지. 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처럼, 따뜻하게 녹아드는 빵처럼, 언제 먹어도 달콤한 초콜릿처럼 즉각적이고 기분 좋은 행복을 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웃음이 아니라, 진짜 순수한 웃음. 요즘은 자꾸 내가 과거로 돌아가나, 왜 자꾸 현실과는 멀어지고 나이브한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지, 싶기도 하다. 그건 평소에 그만큼 현실을 따지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가, 현실 속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고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고, 이건 수익 구조가 어떻게 되고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고. 뭐 그런 것들을 매일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채우다 보니, 나머지 시간엔 그만큼 더 순수하고 생각 없는 공상들로 채우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알래스카에 자꾸만 가고 싶어하는 조휴일처럼. 막상 알래스카 가면 하루도 못 살 것 같은 사람이면서, 알래스카에 가겠다고 자꾸만 말하는 것처럼. 요즘은 깊이 있는 생각 대신 얕은 생각들에 자꾸만 빠져든다. 그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냥 다 모르겠고, 행복하면 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뭐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 꼭 인정 받아야 하나. 대단하고 정말 멋진 사람이야, 이렇게 인정 받아야 인생이 행복해지나. 행복의 기준은 여러 가지야, 보편적인 행복의 기준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사람들이 이거면 행복하겠지, 이래야 행복해라고 말하는 행복의 기준에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추고 싶지 않아. 그런 행복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 그렇게 끼워 맞추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가 있는 게 아닐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어제의 글에서 나는 불안이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렇다 해도 불안을 덜어 두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들 오래오래 내 곁에 건강하게 행복하게 있어 줘 당신들이 있으면 나도 아마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죽는 데에 순서 없다고 하지만 당신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갑작스러운 순간이 찾아온다 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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