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오래오래 좋아하고 싶다고, 좋아하는 것들을 맘껏 좋아할 수 있는 여유를 지키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늘 말하고 살아왔는데 요즘은 버겁다. 좋아하는 것이 도무지 생기지 않는 요즘. 좋아하는 것들에 바칠 열정이 사라진 요즘.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줄 마음이 남아 있지 않는 요즘.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다고 토로해 오지는 않는다는 것. 힘들지 않아서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나에게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닌 것인지도 몰라. 아니면 말을 할 기운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리고 내 인생이 그렇듯 내 주변도 그렇게 다사다난한 라이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모르겠다. 내가 뭐라고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 말하나.
힘들다. 솔직히 하루에 힘들다는 말을 몇 번 하는지 모르겠고, 힘들다는 생각은 정말 수도 없이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기 직전까지, 정말 내내 힘들다는 생각을 내내 한다. 너무너무 힘든데 너무너무 힘들다고 말할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힘들다고 떳떳하게 말할 자신도 없다. 힘든데 힘들다고 징징거릴 수만도 없고. 힘들다고 해야 할 일을 내팽겨치고 살 수도 없다. 무엇을 위해 나는 이렇게 사는 거지? 요즘은 매일 그런 생각을 한다. 무엇을 하고 싶어서 나는 지금 이렇게 사나. 무엇을 위해 나는 이렇게 일을 끊임없이 벌이고, 내가 사랑하는 일들을 포기하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사랑하는 낮잠을 버리고, 사랑하는 주말의 여유로운 아침을 버리고, 사랑하는 침대를 버리고, 사랑하는 새벽을 버리고, 사랑하는 글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만날 시간을 버리고, 사랑하는 영화와 TV를 버리고. 내가 사랑하는 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도대체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거지. 이 모든 사랑하는 것들을 포기한 것 이상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있나. 이 사랑하는 것들을 버리고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살면 괜찮은 인생을 살 수 있나. 괜찮은 곳에 취직해서 돈 걱정하지 않고 사고 싶은 것들을 적당히 사고 하고 싶은 일들을 적당히 하면서 살 수 있나. 그게 하고 싶어서 나는 지금의 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버렸나.
요즘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끊임없이 불안한지 알 수 없다. 졸업을 빨리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일은 빨리 시작하고 싶다. 그냥 돈을 벌고 싶다. 내가 일해서 내가 벌고,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쓰고, 내가 번 돈으로 나의 살림을 꾸리고 나의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잘 모르겠다. 일과 휴식의 명확한 경계가 없는 것도 싫고, 직장에서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나면 끝나고 나서는 오로지 쉴 생각만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일주일에서 목요일만 간절하게 기다리는 이유도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다음날까지 당장 해야 할 일이 없는 목요일 저녁은 내가 하고 싶은 그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물론 내일이 다시 오긴 하지만 일을 마치고 온 저녁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 넣어도 그 어떤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래서 학교보다는 일이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쪽 역시 괴롭고 힘든 일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채워진 저녁이 있으면 그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겐 워라밸이 중요하다. 워라밸이 누구보다도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워라밸이 파괴되는 직업을 꿈꿨던 걸까. 그리고 여전히 그 직업에 대한 열망은 완전히 식지 않았다.
작년에는 인생의 멘토가 필요했다. 내가 품은 인생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해 줄 사람을 찾았다.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잘 살아갔다. 학기 초반에 품었던 불안감과 초조함들은 시간이 좀 흐르면서 자연스레 사라졌거든. 지금도 한때에 불과한 불안과 지침인 걸까. 지금은 멘토는 필요하지 않고, 그냥 버팀목이 있었으면 좋겠다. 버팀목은 거창하니까, 그냥 곁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왜냐면 요즘 거의 매일 밤 외로우니까.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다는 감정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도 아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음을 짓고 나면 분명 즐거웠다 생각하고 나서도, 돌아오고 나면 허한 마음이 든다. 허하고 외로워. 겉도는 사람들과 겉도는 대화들. 사랑했던 익숙함을 버리고 나는 왜 지금 이 낯선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건지, 그 낯설음이 주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왜 견디고 있는 것인지. 외롭고 공허한 순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있으면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지금의 나는 중심이라는 게 없어서, 중심이 필요했다. 그냥 마음을 온전히 내놓고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무엇인가. 오로지 열중할 수 있는 무엇인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은 나에게, 다 잃은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조차 잃어버린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그럴 때에 사랑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으면, 그 사랑에 너무나 큰 마음을 줄까 두려워질 것 같았다. 아마 그 감정은 지금 느끼는 수많은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우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족감과 만족감을 주겠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느끼지 않았던 깊숙한 외로움과 공허함 역시 안겨줄 것을 안다. 그 외로움과 공허함을 감당할 수 있냐고 물으면,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그리고 가볍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외롭고 공허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고 하겠지, 그렇지만 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내 모든 것을 사랑해 줄 것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이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공허함과 외로움을 미리 예상하고 만나는 게, 그 공허함과 외로움을 맞닥뜨렸을 때 더 살 만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까의 나는 그 공허함과 외로움을 만나도, 요즘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메울 수 있다면 그 공허함과 외로움을 감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니야.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공허함과 외로움은 하루종일 쫓아다닌다. 쉴새없이, 시도때도 없이. 요즘의 외로움과 공허함은 잠깐의 밤에 불과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안기는 감정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이런 정신없는 감정들은 사랑하고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면 눈 녹듯 사라져 버릴 것을 안다. 금방 행복하고 헤실헤실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너무너무 만나고 싶은데, 지금의 나에게 너무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가질 시간도 없는 것인지. 어제의 나는 너무나 외롭고 너무나 공허한 마음이 들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무차별 폭격기처럼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연락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밤들이 있다. 때로는 너무나 즐겁고 신이 나서, 때로는 너무나 외롭고 공허해서. 어제는 후자에 속하는 밤이었고, 비록 잘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더라도 그냥 연락을 했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편하게 말을 건네지 않으면 외로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그래서 연락을 하고 나서 너무너무 행복해졌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행복해졌다. 그리고 그 외로움과 공허함을 잊고서 잠에 들 수 있었다.
요즘의 나는 매일 같이 과거를 회상한다. 과거가 조금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 순간들이 너무 예쁘고 반짝거려서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 순간들에 아무 생각 없이 행복했던 내가 너무나 그리워서.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하고 아무 생각 없이 깔깔거렸던 내가 너무너무 그리워서,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마음 설렜던 내 모습이 그리워서, 자꾸만 과거를 돌아봤다. 지금의 나도 나쁘지 않지만, 지금의 나도 물론 미워하지 않지만, 지금의 나는 너무 힘들어서, 해야 할 일에 파묻혀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어서, 그래서 나는 덜 힘들고 덜 지치고 더 행복했던 나를 자꾸만 찾는다. 덜 힘들고 덜 지치고 더 행복했던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자꾸만 보고 싶어졌다. 그때의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건, 덜 힘들고 덜 지치고 더 행복할 수 있었던 건 전부 그 사람들 덕분이니까. 그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그 사람들과 연락하고 수다 떨고 술을 마실 수 있어서 그때의 내가 행복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립고 자꾸만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의 나도 그 사람들과 다 같이 모여서 술 마시고 수다 떨면 그만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 모든 행복해지는 방법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요즘은 당장에 힘들어서 약속 자체가 싫을 때도 있고, 그 약속을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때도 많다. 내일은 그 반짝거리던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시절이 무차별 폭격처럼 쏟아질 텐데. 애써 지우려고 노력한 그 시절이 무차별 폭격으로 쏟아져도 괜찮을까. 지금의 나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고 담담하고 잘 튕겨낼 자신이 없는데.
그냥 아무 말 없이 누가 나 좀 안아 줬으면. 새롭게 기술이 등장하고 아무리 좋은 게 생기고 뭐 그런 거 다 상관없고 그냥 따뜻한 품이 필요해. 요즘은 생각이 너무 많고 이유가 너무 많고 그 모든 게 나를 너무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해. 그 모든 것이 필요없는 사람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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