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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017년 하반기 일기

1. 170721

 

 아주아주 울고 싶은 날. 아무 말도 하기 싫고 집에 있고 싶지도 않고 영화관 가서 영화나 주구장창 보고 싶다. 기왕이면 슬픈 영화 보면서 엉엉 울고 싶다. 사실 그런데 이런 날일수록 마음이 죽어 버려서, 그 어떤 눈물도 안 날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실감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내 인생 마냥 우울하라는 법이 없다는 것.  또한 내 인생 마냥 행복하라는 법도 없다는 것. 우울할라치니 예상하지 못한 행복이 찾아와서 행복했으며, 행복해 죽겠다 생각한 다음날은 정말로 간만에 감정의 바닥을 치는 일이 생겼다. 그런 와중에 요즘 많이 들었던 말이 고맙다는 말이었다. 정말 별 것 아닌 일들에 사람들이 고맙다는 말을 쓰는구나, 의무적인 고마움이 아니라 진심이 느껴지는 고마움이라. 그 고맙다는 말들이 스쳐가는 순간들에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졌는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나는 얼마나 복받은 사람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사람들. 

 그 와중에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 이젠 나의 안전 지대가 되어 버렸다고 느낀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 아니, 상처라고 하기는 어려운가. 그냥 감정의 결이 상해 버려서, 이전 같은 결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에게 나조차도 놀라는 순간은, 사람에게 어느 순간 마음이 덜어지면, 무섭게 덜어진다는 것. 사실 마음을 덜어낸다는 것, 그게 나에겐 몇 번의 몇 번을 참고 참다가 이제 더 이상은 마음이 안 간다, 그런 방식이었기에. 이젠 할 만큼 했다 싶어 관계에서 완전히 나가떨어지기 전에 내가 그저 관두어 버리는 것이었는데. 이번엔 너무나 별 것 아닌 것에 빠르게 반응해서, 놀랐다. 내 자신이 무서울 지경이었다 해야 하나. 

 그냥 요즘의 나를 보면 예전의 나와는 확연히 달라짐을 느낀다. 누군가와 감정적으로 어긋나면, 그 사람이 왜 그랬나 생각하는 게 우선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저 사람이 저럴 정도에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나와는 다르지만 저 사람 성격은 저러니까 이해할 수 있어, 라고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그렇지만 이젠 그럴 수 있어, 는 여전하지만 중요한 건 내 마음인 듯 싶다. 그 사람에게 상해 버린 내 마음을 되씹는다. 이런 일에 왜 상했나, 되묻다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는다. 애써 그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난 괜찮은 척 굽히고 들어가기보다는 그냥 거리를 두어 버린다. 내가 힘들면, 내가 힘들지 않게 방법을 강구하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해서 멀어져 버릴 관계라면, 멀어져도 나에겐 어떠한 손해도 없다는 생각. 아쉬우면 그쪽이 아쉬웠지, 내가 아쉬울 건 아니라는 생각.

 그 동안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그렇게 가까웠고 내 마음을 내어줬던 이에게 상처를 받고 거리를 뒀지만, 결국은 마음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어서 다시 풀어버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좋아하고 아끼고. 그냥 되돌아가지 않는 마음은 그대로 두었지만, 그 사람 없다 해서 아무렇지도 않고 생각조차 나지 않는 관계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래도 아프다. 내가 많이 아낀 사람이고, 의지한 사람인데 이 별 것도 아닌 것으로 결이 상해 버렸다는 게. 회복한 척했지만, 그 쪽도 나도 회복되지 않음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다르고, 그래서 이해하지 못한다. 절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상대가 잘못했다 탓할 수 없는데, 그렇다 해서 나를 탓할 수도 없다. 나를 탓하고 싶지 않다. 나를 탓하고 나를 괴롭히면서까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 순간에서 철저히 혼자였으면 나는 잊어버렸을 수도, 어쩌면 더 괴로웠을 수도. 그렇지만 혼자가 아니었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소설책을 사고 싶다.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을 사고, 내가 그 동안 읽어보고 싶었던 잡지를 잔뜩 사고, 박준의 새로 나온 산문집도 하나쯤 사고, 또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 골라 들고 버스를 타고 오랜 여행을 떠나고 싶다. 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서 책을 좀 읽다가 지겨워지면 일기를 펴고 글을 쓰고 싶다. 글 쓰는 것조차 지루해지면 잠시 핸드폰을 하다가 다시 책을 읽다가, 뭐 그렇게 반복하다가 카페를 떠나고 싶다.

 저녁이 어둑어둑 내려앉은 거리를 걷고 싶다. 적당히 선선해진 바람을 느끼면서 걷고 싶다. 노랗게 켜진 등불을, 가게 이름을, 가게 메뉴판을 마음에 담아 두고 싶다. 다정하게 거리를 걷는 연인들을, 말갛게 웃음을 터뜨리는 친구들을 보면서 이 곳에 누구와 무엇을 하러 다시 와야지, 상상하고 싶다. 혼자 걸으면서 했던 소소한 상상과 그 순간에 느꼈던 행복감을 켜켜이 쌓고 싶다. 집에 가야 할 시간을 상관하지 않고 천천히, 오래오래 걷고 싶다. 익숙한 길이 아닌 옆골목을 탐방하고, 여기까지 가 봤다면 그것보다 한 블럭 더 걸어가고 싶다. 그렇게 걷다가 다음에 꼭 와 보고 싶은, 마음으로 찜해 둔 가게들을 늘려가고 싶다.

 문득 글을 쓰다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글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의문을 품었던 사람의 이야기. 한편으로 사람들은 그저 공감을 일으키는 글도 필요할 때가 있다고 말해왔다. 그 사람과 내가 달랐음을 다시 한 번 인지한다. 나는 여전히 감정을 다루는 글들을 좋아하고, 쓰고 싶어 한다. 내가 오로지 잘 아는 것들이니까.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을 오만하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슬픔을 잘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다. 위로를 적절하게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겪은 슬픔이 아니니까, 설령 비슷한 종류의 슬픔을 겪어 봤다 해도 완전히 같을 수는 없으니까, 그 어떤 말도 쉽게 건넬 수 없다. 진부하고 뻔한 위로를 건네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말도 건네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고민하다가 위로의 타이밍을 놓치는 것은 싫은데, 그렇다고 해서 마음 없는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지도 않다.

 

 

3.

 

 가을방학 노래가 너무 좋아서 덥지만 조금은 행복한 날이다. 계피 목소리는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신나는 노래가 없어서 도통 무슨 노래를 들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였는데, 역시 나에겐 가을방학의 신나는 노래 정도의 템포가 기분 좋게 나가는 날 들을 때 딱 맞는 게 적당하다. 그리고 적당한 익숙함. 한동안 정말 많이 들었던 노래들이지만, 요즘 듣지 않아서 반가운 노래들. 이번 가을방학 마음집은 나에게 딱 그런 느낌이다. 반갑고 익숙하고, 언제 봐도 좋은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느낌.

 그냥 이렇게 익숙하게 좋은 게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 사람도, 좋아하는 노래도, 장소들도. 세상이 계속 바뀌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도, 생각났을 때 찾아가면 언제나 그 느낌 그대로 있는 그런 것들. 바뀐 나도 보듬어주고, 그 곳에 가면 변하기 이전의 변함없는 나도 찾을 수 있는 그런 곳.

 아아 좋아하는 게 너무너무 많아졌다. 그러면 그럴수록 지키고 싶은 것도 나누어야 하는 것도 많아지는 셈이지만. 요즘 어디를 둘러봐도, 무엇을 해도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 기억들은 행복하긴 하지만, 행복해서 그립고, 그래서 뭔가 마음이 이상해진다. 어느 순간엔 지금 나의 모습도 그렇게 아득하고, 예쁘고 낭만적이었던 순간으로 기억이 될까. 내가 지나간 시절을 그렇게 기억하는 것처럼. 서툴렀지만, 서툴러서 예뻤고. 지금이라면 그러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때니까 그럴 수 있었겠구나 하고 그때의 나를 보듬을 수 있는.

 문득 착한 사람을 만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때의 내가 누군가와 마음이 엇갈리고, 내가 주는 만큼 받지 못하고, 마음을 열고 싶은데 열 수 없었던 상황이 반복되면서 마치 내가 아무 것도 아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더랬지. 타인으로 인해 나의 가치가 판단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지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엔 그렇게 되어 간다. 결국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게 사람 때문이었기에, 지금의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상처를 주고 말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사실 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해서 나를 괴롭히는 관계는 그저 내버려두어도 된다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두어도 된다고 생각하기에. 그냥 그렇게 해 버렸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인 건 알기에, 그냥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어쩌면 그 사람은 그 정도로 세심하게 마음을 돌보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내가 끌리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괜한 걱정을 해주고 있는지도 몰라. 그냥 그 동안 늘 그래왔듯이, 속 편하게 살아도 상관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게 부끄러운 게, 속 편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순간 스쳐가는 생각에 불과했기에.

 사실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정의할 수 있긴 하겠다. 나의 이런저런 특성을 나열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그런 걸 적다 보면 그냥 그 틀에 내가 갇혀 버리는 것 같아서, 구체적으로 이것저것 나열하는 것 대신에 그냥 두루뭉술한 느낌으로 놔 두고 싶다. 잘 모르겠다, 정해지지 않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이렇게 행동하면 되겠다, 내가 이렇게 행동해도 되나 어느 순간 더 명백하게 필터링하고 있을 게 싫어서.

졸립다. 책을 읽으려고 만날 가방에 책은 넣어다녔는데, 책을 펼치고 싶지 않은 날이다. 

 

 

4. 집에 가고 싶게끔 만드는 사람

 

 좋아하는 것을 쌓아갈수록 나쁜 것 중 하나는, 그 좋아하는 것을 모두 연인과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공유할 만한, 이런 취향을 가진 연인을 만나야 한다는 소리인데, 쌓으면 쌓을수록 기대치가 커진다. 20살이 갓 되었던 나는 연애에 대한 로망이 잘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같이 나누고 싶은 음악도 책도 영화도 장소도 많아진 사람이 되어 버렸다. 좋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선을 그어 버리는 태도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앞으로도 로망 같은 건 없는 사람이고 싶은데. 이걸 해야지, 준비했다가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그냥 이 순간에는 이걸 하면 좋겠어, 하고 떠올리는 사람이고 싶은데.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다가 마침내 성취해서 기쁘기보다는, 그냥 그 순간에 충실하게 행복하고 싶은데. 예상치 못한 순간순간을 아름답게, 행복했다고 기억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 게 많아도, 좋아 죽겠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니더라도, 같이 하는 그 자체가 행복할 것임을 안다. 어디서 술을 마시든, 뭐를 먹든, 뭐를 같이 하든 중요하지 않아. 서로 눈을 맞추고,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거지. 그런데 그냥 그 모든 차이가 용서되는 강렬함을 느끼지 못한 게 너무도 오래되어서, 찾아오기는 할까 싶기도 하다.

 하여튼 좋은 게 많다. 보고 싶었던 것을 보고, 읽고 싶었던 것을 읽고 산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사랑에 빠진 사람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내가 알던 사람인데, 그냥 되게 낯선 기분. 그래도 지나간 게 아쉽지는 않다. 알고 있으니까, 날 저렇게 웃게 할 사람이 아니었음을. 할 말 없는 연락을 지속할 때보다, 그냥 그 의무감이 싫었고 연락이 와 있을까 핸드폰을 켜고 싶지 않았던 그 때보다 그냥 내 멋대로 해도 되는 지금이 나으니까. 도대체 언제쯤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줄 셈이냐고 생각했다. 한 번 봐도 마음을 열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고, 볼 때마다 마음을 닫게 되는 사람이 있어.

 내가 잘못되었다 말하고 나를 탓하고 나를 바꾸려고도 해 봤는데, 바뀌지가 않는다. 바뀌지도 않고, 바꾸려 했는데 힘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나는 본래 나의 방식을 고수하기로 했다. 말하다 집에 가고 싶어진 사람을 자주 본다 해서 그 사람에게 사랑에 빠질 일은 없어. 가면 갈수록 더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거야. 그럴 바엔 집에 있는 게 낫지. 사람을 만나고 있는데 상대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너무나 잔인하다. 어느 누군가에겐 나도 그런 상대였겠지.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듯이. 

 

 

5. 170818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마음을 오롯이 담아내고 싶어서, 세상의 많은 표현 방식을 배우고 싶다.

 

 

6. 171019

 

 내가 하는 이야기를 왜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기를 원하는 걸까. 근본적인 고민이었다. 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싶었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를 꿈꾸지는 않았다. 훌륭한 전달자가 되고 싶었지, 훌륭한 창작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 표현하는 방식을 창작해 내는 것은 맞았지만 그 알맹이 자체가 내 것이기를 바랐던 적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내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었던 거다. 내 이야기를 하기가 두려웠던 것도 있고. 그냥 내 이야기 대신, 내 이야기 같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그렇게 공감하면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부끄러웠던 거지, 하라고 사실 멍석을 깔아주면 신나서 할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내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를 써내면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었다.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하는 게 두렵고 부끄러웠던 것뿐이었다. 남에게 평소에 절대 보여주지 않았던 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 그런 모습을 갖고 있는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솔직한 것만큼 멋진 글이 어디 있나, 싶어졌고 나는 솔직하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글만 올렸던 게 생각이 났지. 솔직한 글은 어떻게 숨겨야 하고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7. 171206

 

 오늘은 조금 행복했다. 뭘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그리고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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