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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줄리아하트와 9와숫자들

 오늘도 해야 하는 일은 산더미.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 않고 쉬고 있어서도 하나도 편안하지 않아. 하고 싶은 일들이었고 지금도 그 자체로는 즐거운 일들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데드라인을 정해 놓고 하려니까 몸도 마음도 무겁고 지친다. 과연 잘 끝낼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결국에는 어떻게든 해내겠지.

 

 어제 내내 들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가사를 쓸 수 있지, 하고 감탄을 멈출 수 없었던 줄리아하트의 노래를 듣고 있다. 시모네타도 그렇고, 미래도 그렇고 GRANADA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줄리아하트만큼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가사는 없었던 듯. 가을방학의 가사도 물론 좋았지만, 가사만 놓고 본다면 훨씬 줄리아하트 쪽이 내 취향. 예상치 못한 단어들의 조합, 그 조합들이 만들어낸 표현은 신선하지만, 그 표현이 주는 느낌은 이미 잘 알고 있는 느낌이다. 알고 있지만 딱히 표현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표현한다 해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할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던. 뭐 이런 것을 노래하나 싶은 솔직함이 좋아서, 실용 스페인어도 좋아한다. 해변에서 수없이 많은 키스를 했다는 말도, 난 언제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말도, 그냥 낭만적이야.

 

 줄리아하트의 가사가 너무 좋아서, 왜 좋은지에 대해 구구절절 적어 놓고 이걸로 글을 완성도 있는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발매 직후에 완성도 있는 글을 써 보겠다는 결심은 귀찮음으로 인해 탈탈 털렸고, 좋아하는 이유를 찾을라면 잘 찾아 내서 그럴 듯하고 논리적으로 말도 잘 되는 글을 써 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냥 지금은 이유 생각 안 하고 그냥 좋다. 발랄한 멜로디인데 귀엽고 발랄하지는 않은, 그냥 조금은 담백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고, 솔직하고 스윗한데 진부하지 않아. 좋아하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겠다, 아니 좋아한다고 말할까 뭐 이런 식의 가사들이 몇 가지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청개구리 같은 포인트들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한 이유로 미래와 시모네타를 특히나 애정하고. 이렇게 줄리아하트에게 빠질 줄이야.

 

 개인적으로 나에게 있어 2017년 하반기 베스트 앨범은 줄리아하트라고 생각했다. 2017년 최고의 앨범이라고 하기에는, 언니네이발관의 6집이 너무나 소중해서. 요즘 그래도 연말이 되어 간다고, 또 혼자 연말 분위기에 좀 젖었나 보다. 언니네이발관의 감성보다는, 줄리아하트의 감성이 끌리는 것을 보면. 그러면서도 트리 설치하는 게 싫고, 연말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심술을 부리고 있다. 그렇지만 빨리 종강하고 유럽 여행 가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러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예쁜 베레모를 쓰고 어딜 둘러 봐도 예쁜 그 곳에서 낭만적인 음악을 듣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종강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종강한다고 해서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마켓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크리스마스 마켓 없어도 좋으니, 그냥 종강하고 따뜻한 이불과 따뜻한 전기 장판 사이에 몸을 끼워 넣고 온종일 넷플릭스와 TV 예능을 왔다갔다 하면서 뒹굴뒹굴대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간간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수다 떨고. 인생이 뭐 대단한가. 그 정도의 행복은 이 시기만 지나면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래도 어떻게든 잘 굴러 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여튼 지금의 플레이리스트는 미래를 재생하고 있는데, 이 노래를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들을 때마다 가사에 감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별할 때 상대에게 이 노래를 너무너무 들려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별하는 와중에 노래를 추천해 줄 수는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연애하는 도중에 이별에 대한 노래를 추천해 주기도 어려운 거고. 그렇지만 이 노래만큼은 꼭 연인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 노래뿐만 아니라 이번 서교 앨범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할 이야기가 많은 앨범이라고 생각했거든. 영화 보고 아주 길게 평론가처럼 후기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음악을 듣고 나서는 가사에 대해 긴 이야기를 펼쳐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음악을 듣고 긴 이야기를 펼쳐 놓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를 보고 긴 이야기를 펼쳐 놓는 사람보다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고, 줄리아하트의 서교를 듣고 긴 이야기를 펼쳐 놓고 싶어하는 사람의 감성에 공감해 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있기야 있겠지,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만나기도 했었고.

 

 그렇지만 그런 감성을 공유한다고 해서 또 마음에 들고 좋아하게 되고 그런 것은 아니더라. 사랑은 참 이상한 것. 이런 사람이 좋다고 정의해 봤자, 딱 거기에 들어맞는 사람은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물론 다 갖추고 있다면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만) 또 무조건적으로 마음이 가고 그런 것은 아니니까.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지 방향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끔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의미 있는 고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속에 갇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조건들이 나를 구속했던 적은 없으니까. 뭐 이런 저런 조건보다 늘 언제나 더 중요했던 건, 눈빛이고 끌리는 마음이었으니까. 

 

 하여튼 줄리아하트도 너무나 좋은데, 오랜만에 9와 숫자들을 꺼내들었는데 9와 숫자들 또 이렇게 좋을 일이냐... 9와 숫자들과 관련된 작은 에피소드 알고 난 이후로 구숫 잘 안 들었는데 9와 숫자들은 또 결이 다른데 가사가 너무 좋아서 오늘 또 혼자 감탄했다. 유예 앨범 이렇게 좋을 일이냐... 유예 앨범에서 눈물바람이나 그대만 보였네는 원래 좋아했던 노래였지만, 몽땅 진짜 너무너무 좋다. 몽땅은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들으면 최고인 노래다. 몽땅 들으세여...아주 멜로디부터 내 취향인데 가사도 아주아주 내 취향이다. 혼자인 것을 좋아했던 부분부터 아주 이거는 나의 노래야, 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랑에 빠지면 바보스럽고 무모해지는 순간들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영화든 노래든 그런 바보 같은 순간에 대해 그려내는 것을 매우매우 좋아한다. 그 바보스러운 모습을 귀엽고 예쁜, 가식적인 포장을 씌워서 그려내는 것 말고. 굳이 그렇게 가식적으로 예쁘게 만들지 않아도, 그냥 그 바보스러움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으니까. 중경삼림도 그렇고 몽땅도 그런 면에서 사랑스러운 것들이다. 그리고 몽땅이 더 좋았던 이유는 후렴구의 가사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마음을 주지 않을 거라고 해도, 설레는 표정 친절한 말투 그 무엇이든 어느 하나라도 나에게 달라고 우길 사람이긴 하지만, 주지 않을 거라면 그 무엇도 주지 말라고, 줄 거라면 숨기고 싶은 비밀 그 어떤 어둠도 모두 달란 말이야 하는 가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달란 말이야, 하는 말투가 투정 부리는 아이 같았고, 나는 사랑에 빠지면 아이가 되는 순간을 좋아하니까. 앞에서 말했듯 나는 청개구리 짓을 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런 것을 좋아하니까, 이렇게 조르고 싶어졌다. 그리고 대놓고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늘 연인이 나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 그 어떤 어둠도 나에게 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숨기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장난인 것처럼, 그래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인 것처럼 아이처럼 조르는 척하면서 사실은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내가 아는 사랑 노래 중에서 '몽땅'은 정말 역대급 사랑 노래라고 생각해. 정말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사람에게, 몽땅 마음을 빼앗겨 버린 사람에게 이 노래를 반드시 들려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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