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너무나 글을 쓰고 싶었고, 머릿속에서 수많은 문장들을 굴렸다. 그렇지만 일어나 앉아 노트북을 켜는 일이나, 펜을 꺼내 노트를 펼치는 일이 너무나 귀찮아서 이런저런 영상들을 돌려 보다가 잠들었다. 오늘도 아랫배가 살살 아팠고, 마찬가지로 글은 쓰고 싶었지만 조금도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고 싶었다. 그렇지만 요즘의 평안을 기록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책상 앞에 앉아 사랑하는 문장을 옮기고,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누군가와 방을 나눠 쓰는 생활을 해 왔다. 6년 동안 기숙사에서 살면서, 정말 많은 룸메이트를 만났다. 6인실을 쓰다가, 4인실을 쓰다가, 3인실을 쓰다가, 2인실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그렇게 한시도 사람과 떨어지지 않은 채, 시끌벅적하게 사는 삶이 좋았다. 사실 그때에는 그게 좋은 것인지도 몰랐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붙어 있는 일상이 너무나 당연했고, 혼자 있는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를 잘 몰랐으니까. 20살이 되고서야, 혼자 있는 시간이 비로소 생기고 나서야, 그렇게 한시도 외로울 틈 없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공간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 당시에 6인실, 4인실을 썼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같이 방을 쓰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즐거웠다. 같은 일상을 공유하고, 같은 사람들을 아는 사람들과 살았던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것이기 때문에, 방에 들어와 수다 떠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쉽고 어렵고를 따지지도 않았다. 그때는 방에 들어오면, 너무도 당연하게 룸메이트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휴식이었다. 방을 같이 쓰는 게 불편하다,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것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재했던 시기였다. 12시라는 소등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그 이후에 다들 불을 잘 끄고 자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사감 선생님이 방문을 열고 점호를 하던 시기였다. 우리에게 너무 많은 한계와 금기가 있던 시기였는데, 그 한계와 금기를 깨는 자잘한 스릴이 있던 시기였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던 시기였다.
그 이후로도 기숙사에 계속 살았다. 그렇게 기숙사를 살면서도 그다지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지난 한해는 방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룸메이트를 만나 방에서 온전히 혼자인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2018년은 외롭고 힘들었던 한해이기도 했고, 혼자 있고 싶었던 시간이 많았던 해이기도 했고, 룸메이트와 친하지도 않았던 해였다. 그래서 작년 말쯤, 처음으로 더 이상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문득, 지금의 평안은 혼자만의 공간을 가진 것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족과 같이 살고 있지만, 오롯이 나만의 방이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보니, 10시에서 11시 즈음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주무시고, 11시부터는 온 집안이 조용해진다. 온 집안의 불이 다 꺼지고, 오로지 내 방의 불만 꺼져 있는, 고요하고 평안한 시간이다. 다 씻고 전기장판을 켜고 침대에 누워서 읽고 싶은 만큼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옮기고, 주말처럼 늦게 자도 되는 날에는 일기를 쓰고, 영상을 보다가 잠든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원하는 만큼 불을 켜 두고, 원하는 만큼 노트북을 두드리고, 작은 볼륨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켜 둔다. 너무나 별 것이 아닌 일들이지만, 누군가와 공간을 같이 쓴다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사랑하는 새벽, 고요한 시간대에 이 모든 고요한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평안에 기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데드라인이 없고, 내일 해야 할 일을 그리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하게 되어서 그런 탓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혼자만의 공간을 확보했으면 진작에 해결되었을 일일지도 몰랐다.
이유야 무엇이든, 평화로운 일상을 사랑한다. 이전에 생각했던 나의 평안은, 골목길을 걸으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이었다. 조용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주택가를 걸으며 아이스크림을 먹던 순간들. 베어 물자마자 퍼지는 차가운 감촉, 그 행복의 감촉을 자각하는 순간을 사랑했다. 그 순간만큼 평화로운 순간은 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아마 요즘의 저녁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의 행복, 빨리 이 책을 완독하고 다른 책을 사러 가야지를 상상하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저녁. 그 와중에 따뜻한 전기장판과 이불이 있고, 편안한 잠옷을 입고 있는 상태인 저녁. 평화는 멀리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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