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감정을 원하다가도
스스로의 감정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은 좋은 일일까. 요즘은 스스로 왜 이런 기분에 젖어 있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왜 이런 기분이 들었지, 잠깐 생각해 보면 그 답이 보였다.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답을 직면하고 싶지 않아서 피하려고 애쓸 뿐이었다. 요즘의 나는 어떤 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게 싫었다. 의식하지 않는데 자꾸만 떠오르는 게 싫었고, 기대하는 게 싫었다. 꽤 긴 시간 동안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었고,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해 왔으면서도 그런 기분을 느끼기 시작하자 부정하고 싶어졌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정할 수 없이 그 오래 전의 감정과 너무나 비슷했다. 처음 그 사람을 봤을 때, 그리고 그 후에 그 사람을 봤을 때 했던 생각들과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그에 맞추어 했던 행동들. 그게 지금의 나와 상당히 비슷하다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지금의 나는 아는 것도 없고 그 어떠한 가능성도 없으면서 왜 그런 생각에 자꾸만 사로잡히는 것인지, 쓸데없이 왜 자꾸만 기대감을 품기 시작하는 것인지. 그게 싫었다.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오는 허탈함이 싫으니까. 기대 뒤에는 실망감만 남을 뿐이니까. 그 어떤 기대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고 싶었는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꾸만 기대하게 된다. 자꾸만 가까이에 가고 싶고, 자꾸만 눈을 마주하고 싶어지고, 자꾸만 생각이 나고, 별스럽지 않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그리고 이런 글을 쓰고 나면 그 감정을 인정하게 되어 버려서,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싫고 이런 이야기를 내 입으로 꺼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는 것이지. 지나가면 지나가는 것이지만, 지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때도 나는 그 어떠한 기대도 품고 싶어하지 않았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날의 바로 전날에도, 나는 그 사람이 절대 나를 좋아할 리 없다고 말했었지. 그리고 그날 밤 우리가 그렇게 취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길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은, 정말로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게 맞았나, 싶은 마음도 든다. 그건 그냥 충동이 아니었을까. 내 마음만 진심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나를 전혀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했던 순간에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
정말 좋은 사람을 좋아하고 싶은데. 오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봐도, 그때 그 사람을 좋아했던 내 마음을 추억하는 게 아니라,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고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그렇게 좋은 사람이 있는 것인지 자꾸만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좋은 사람을 꼭 만나고 싶은 게 아니면서도 자꾸만 뒤로 가고 싶어서 자꾸만 조건을 붙인다. 아무 답이 없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