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TO THE SKY
요즘은 다른 이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에 대해 생각한다. 짧은 그의 소개를 읽고, 이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한다. 끌어내기보다는, 이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것 같다. 독심술사도 아니고, 단 한 번도 만나 보지 않은 사람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 알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작은 조각의 자기 소개를 들고서, 그래도 이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막막하다가도 생각하다 보면, 그래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난다. 재미있다.
기본 질문들로 설정해 둔 것은, 사실 나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이 아닌가 싶다. 자기 소개, 요즘 어떻게 살아,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뭐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이런 것들. 일 대신 사람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만으로 나를 설명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 사람이 한 일을 빼고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사람을 보고 싶었다. 그 일을 왜 하게 되었는지, 그 일을 통해서 어떤 것들이 바뀌었는지. 늘어놓고 보니 자기 소개서 질문들과 똑 닮아 있다. 그렇지만 이게 입사에 도움이 될까, 내가 쓴 직책과 연관이 되나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는 질문들이니까, 자기 소개서용 질문에 대한 대답들과는 꽤나 다른 대답들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요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괜찮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건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게 괜찮은 인생일까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어떻게 돈을 버는 것이 괜찮을까에 대한 고민인 것 같다. 어떤 게 괜찮은 인생인가에 대한 고민은 지금까지 많이 했으니까. 괜찮은 인생은 행복한 인생이겠지. 행복한 인생은 어떤 것인지 모르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들인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이 배웠으니까, 순식간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이미 많이 알고 있으니까, 더 이상 그 방법들에 대해서는 고민스럽지 않은 것 같다. 대신 어떻게 돈을 버는 것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일까, 싶다. 예전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면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은? 지금은 예전처럼 꿈꿨던 일에 대한 동경이 사라졌고, 그 일을 한다 해서 마냥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 일을 하게 되면, 좋아하는 다른 일들을 아마 포기해야 할 것이라는 것도. 예전엔 그래도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니까 행복할 거야, 생각했지만 지금은 과연? 이라는 의문이 든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들고. 잠을 자는 것도 좋아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필요한데, 그 일을 하면 그 일들을 할 시간들이 현저하게 줄어들 텐데, 그래도 괜찮아? 지금의 나는 잘 모르겠어, 라고 답한다. 20살의 나는 그런 고민들 대신, 그 높은 경쟁률을 제칠 수 있겠어? 그 경쟁률을 뚫고 합격자 명단에 오를 수 있겠어? 라는 질문에 차마 답을 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오래 품어 온 꿈을 접어 두었었다. 지금의 나는 게으름이 주는 행복, 일 대신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즐기는 데에서부터 오는 행복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 있냐는 질문에 차마 답을 할 수가 없어서 그 꿈을 다시 접는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다시 살아난 미련은, 예전처럼 완전히 접어 두지 못하게끔 만들었다. 요즘 뭐 하고 싶냐고 물으면, 다시금 그 꿈을 조심스럽게 입에 올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동경이 사라진 요즘, 과연 그 일이, 그 일을 하는 상황이 과연 행복한 건 맞냐는 의문도 계속해서 든다. 괴로움을 버티다 못해 버티지 않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이어진 사고와 죽음들이 있었고, 그 상황을 폭로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그 소식들 속에서 생각했다. 나는 그런 상황들을 방관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그 상황들을 바꾸기 위해 그 고리를 끊을 용기도 없었다. 원래 다 그래, 나도 다 겪었어, 라는 말들 속에서 그렇다고 해서 그게 옳은 건 아니잖아요, 우리 다 이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계속 그래 왔다는 말 아래서 계속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말 없이 그 일을 계속하면서 내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 절대로 행복할 수 없어.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내가 하고 싶은 쪽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계속 들려올 때마다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야 하고, 그렇게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이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야?라는 물음을 품게 한다. 요즘의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다지 좋아하는 일은 아니더라도, 내가 어느 정도 해 낼 능력이 있어서 일자리를 얻고, 그 일을 통해 돈을 많이 벌어서 그 돈을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데에 마음껏 쓰는 인생이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처음으로 깨졌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행복할 거야, 라는 생각이. 아주 싫어하는 일만 안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퇴근 이후와 휴일에는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울 수 있어, 라는 생각을 하면 금방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사는 인생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그것도 괜찮은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싫어하지 않는 일이 무엇이지. 싫어하는 일이 무엇이지. 싫어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어느 정도 벌고, 적당한 워라밸을 지킬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그런 곳이 존재하기는 하나. 그런 일을 하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이런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일 자체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일이 끝난 이후의 삶을 위해서 일을 한다면 일 자체를 좋아해서 하는 사람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 못 따라가겠지, 그런데 일 자체가 욕심 나는 게 아니면 굳이 따라가야 하는 이유가 있나? 그래도 살면서 사람에게 성취감은 중요하잖아. 성취감이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오랜만에 느끼고 나서 그 성취감에 집착하게 되었잖아. 사람마다 다르지만, 일을 통해 얻는 성취감이 큰 사람이잖아. 그게 굳이 주업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다른 좋아하는 일들을 할 시간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하고 싶었던 일들을 따로 해 내면서 그 부분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다른 일을 직업으로 삼고 좋아하는 일을 남는 시간에 하면서, 과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결과물을 낼 수 있어? 못 낼 것 같아. 그렇지만 성취감이 뭐 별 건가,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뤄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잖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은, 가죽이나 영화나 주말에 취미로, 레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던 사람과 너는 진짜 좋아하는 일을 주말에, 취미로 막 하냐고 묻던 사람의 대화였다. 그 영화의 엔딩이 어땠는지, 여전히 기억한다. 이러니 내가 이 배우를, 이 감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싶었다. 하던 생각들과 고민들을 모두 멈춘 채, 오늘 밤엔 이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만이 남았다. 이렇게 흔들리면서 살아야겠지, 그래야 무너지지 않겠지. 조약돌 같이 무심하게 툭 던지는 대사들에도, 마음이 오래오래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