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웠지만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밤들
넷플릭스 한 달 무료 사용 + 넷플릭스 3개월 무료 이벤트 당첨을 통해 약 4개월 내내 넷플릭스와 함께 살았다. 정말 이용한 날 중에서 넷플릭스를 안 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매일매일 넷플릭스를 달고 살았다. 2017년이 안정적이고 평정심이 가득했던 해로 남을 수 있었던 건, 혼자 있는 시간들이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롭지 않았던 건 아마도 넷플릭스의 공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금 공강인 나로서는 목요일 밤이 일주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는 날이라 할 수 있었고, 할 일을 다 마무리하고 방으로 돌아가는 목요일 밤, 나는 편의점에서 과자를 골라 기쁜 마음으로 오르막길을 오르곤 했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봐야 오늘 기분에 잘 어울릴까, 하는 마음으로 방에 들어서서 오랜 시간 동안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고, 그러다 결국 한 시 즈음에 영화를 보기 시작해서 세 시 즈음에 영화를 끝마쳤던 날들. 세 시 즈음에 영화를 보고 나서도 바로 잠이 오지 않아서, 간단하게 후기를 쓰고 또 다른 드라마들을 보다가 네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던 날들. 다음 날엔 알람을 맞추어야 할 필요도, 늦게 일어나도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로움에 행복했던 밤들. 11시에 미적미적 일어나서 아침부터 유튜브를 보고, 전날 밤에 사 두었던 빵을 오물오물 먹던 아침들. 다시 드러누워서 넷플릭스 드라마도 보고, 게으르게 보내다 보면 금방 찾아 오던 오후. 넷플릭스와 함께했던 2학기는 그랬던 것 같다. 혼자 있어도 딱히 외로울 새 없었던 시간들. 늘 좋아하는 게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거든.
언제나 좋아하는 건 끊임없이 존재했다. 음악을 달고 살았으니까. 언제나 사랑하는 음악들을 구비해 두고 있었다. 매 달 무제한 스트리밍을 결제하는 몇 천원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이었다. 매일 같이 오늘 나온 음반은 무엇이 있나, 그 중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반이 있나 구경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고 그러다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앨범을 발견하면 기뻐하고. 그 음악을 들으면서 앨범 소개, 가사, 사람들의 평을 읽어 보는 게 작은 재미였다. 가끔은 그런 과정 속에서 새로이 좋아하는 뮤지션을 발견하기도 했고, 음악이 너무 좋아서 혼자 마음 속으로 난리 법석을 떨었던 밤들도 있었다. 그런 밤에는 불을 끄고 스탠드만 켜 두고 그 음악을 들으면서 일기를 썼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음악을 들으면, 음악이 배로 좋게 들리는 효과가 있었다. 때로는 오래된 음악을 들었다. 중2 때부터 인디음악을 좋아했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지금껏 사랑해 온 음악들이 꽤 쌓였다. 가끔 예전에 수없이 들었던, 익숙하지만 또 요즘엔 듣지 않아서 지겹지 않은 음악들을 만나면 그렇게 또 반가울 수가 없었다. 새로운 음악은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서, 언제 신나 해야 하고 언제 슬퍼해야 하는지, 언제 절정에 이르는지 알 수가 없어서 예민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미 익숙한 음악은 함께 절정을 기다릴 수 있고, 인트로만 들어도 마음이 편해지며 가사를 흥얼거릴 수 있는 여유도 있다. 그래서 익숙하지만 지겹지 않은, 한때 사랑했던 음악들을 듣는 건 언제나 반갑다. 반가움을 넘어서 행복으로 다가서는 일들. 그래서 오늘도 조금은 울적한 마음에 브로콜리너마저의 1집, 2집을 듣고 있다. 이 음악들을 들으면 100퍼센트 포근한 기분이 들 거야, 기분이 풀어질 거야,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음악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브로콜리너마저의 1집. 가을방학의 초기 앨범들도 그렇고, 언니네이발관 5, 6집도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자주 찾아 듣는 건 김사월의 사운드클라우드.
때로는 그보다 더 오래된 음악을 듣는다. 20세기의 음악을 소환해서 듣는데, 20세기의 음악만이 갖는 고유한 분위기를 사랑한다. 예전에도 그 음악들을 들으면서 일기에 썼던 표현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데, 따뜻한 난롯불 앞에서 손을 녹이는 기분이라고 했다. 추운 겨울날 오들오들 떨다가, 뛰어 들어온 집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 주는 음악들인 것 같다. 비어 있는 집이 아닌, 따뜻하게 데워져 있고 같이 하루의 마지막을 나눌 사람들이 있는 집. 사실 그 음악을 듣고 있는 지금은, 혼자 걷고 있는 밤 거리이더라도, 그 길의 끝은 불 꺼진 방이라고 해도. 그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외로움 대신 따뜻한 기분이 들곤 했다. 20세기의 음악들을 사랑하게 된 건 2017년 참 잘한 일 중 하나네. 그 오래된 음악들을 들을 수 있는 밤들, 그 오래된 음악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밤들이 있어서 위로가 되었던 때가 많았다. 사랑하는 몇 곡을 꼽자면, 김광석의 기다려줘,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변진섭의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이 정도가 있겠다. 그 음악들을 들으면서 아무래도 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들 때가 많았다. 라디오가 전성기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라디오 PD를 계속 꿈꿀 수 있었을 텐데. 밤마다 라디오가 하는 시간이면 쪼르르 라디오 앞에 앉아서 라디오를 듣고, 사연을 쓰면서 내 사연은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잡지를 모으고. 그렇지만 내가 전한 그 시절의 모습들은 미화된 것들이 많겠지. 막상 그 시절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고, 사실 지금이 훨씬 더 살기 좋은,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음을 안다. 그렇지만 그 시절에는 또 지금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 시절만의 멋이 존재했던 것이고, 그 시절의 멋이 가끔은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 지금도 좋아하는데, 그때 유행하는 것들이었더라면 한껏 신나서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넷플릭스로 시작해서 음악으로 끝나는 이상한 이야기. 음악에 대해 오래오래 말하고 싶은 욕구가 언제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음악이니까. 음악들로 위로 받았던 밤들 또한 많으니까, 그 밤들을 알고 싶어하고 그 밤들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그 밤들을 함께 했던 음악들도 함께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80년대의 음악들을 들으면서, 이 음악을 왜 듣냐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옆에서 가만히 들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은 슬며시 다음 곡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노래를 틀거나. 취향이 비슷하다고 해서 사랑에 꼭 빠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취향이 비슷했으면 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사랑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그 사랑하는 것들이 삶을 지탱해 줬던 날들도 너무나 많으니까. 그 날들을 무시하고, 없는 것처럼 바라보는 사람과는 함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밝고 행복하고 마냥 즐거운 나날들도 있지만, 동시에 우울하고 위로가 필요하고 생각이 많아 잠 못 이루던 밤들도 있었으니까. 그 밤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그 밤들을 항상 함께할 수는 없더라도 그 밤들의 존재를 지우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라면, 자연히 그 밤들을 채웠던 것들을 궁금해 하지 않을까. 똑같이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말을 꺼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그 밤들을 지우고 싶어지질 않기를.
대세인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대세인 건 다 이유가 있다는 데에 동감하는 편이긴 하다. 버스 간격처럼 배치된 촘촘한 상영 간격 덕분에 관객 수를 수없이 동원한 영화들에서는 그 이유를 찾기 어려울 때도 많았지만. 사람들이 좋다 좋다, 입소문이 난 것들에는 뒤늦게라도 찾아보고 나면 왜 그랬는지 이해하게 되었던 것들도 많았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다시 보고 싶어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