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호에호 2018. 1. 27. 02:46

 절박한 사람들을 보면 두려워진다. 지금의 나는 절박함이 없고, 절박하게 노력하지도 않지. 그 와중에 절박하게 무엇인가를 원하고 절박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두렵다. 두려움과 불안이 함께 찾아온다. 오늘은 최선이라는 말으로는 부족한, 최선 이상으로 극도의 노력을 쏟아 부은 사람의 발을 보았고, 그런 사람의 발이나 이야기를 들은 게 오늘이 처음이 아니면서도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한때는 '죽기살기로 하면 패하고, 죽을 각오로 하니 승리했다'라는 말을 보고 멋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런 마음가짐으로 살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했고 한때는 다른 걸 다 포기해 가면서 죽을 만큼 노력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목숨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하나, 저게 정석인 것처럼 보여줘야 하는 건가 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자신을 혹사시키면서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인가, 사람마다 삶의 가치가 다른 것이니 누군가에겐 어떻게 해서든 원했던 것을 성취해 내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적당히 열심히, 적당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최고의 인생이 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사람마다 꿈꾸는 삶이 다른 것인데, 전자는 성공한 인생이고 후자는 뭣도 없는 인생이 되어야 하나. 우리는 왜 무엇인가를 성취해 낸 사람만을 조명하고, 그 사람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희생한 많은 것들을 아름답다고만 포장하는 것인가. 분명 아름다울 수 있지, 그렇지만 그런 삶의 방식을 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왜 조명하지 않는 것일까. 치열하게 사는 삶만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치열하게 살지 않는 것에 대한 자기 합리화인가, 생각하면서도 자신을 괴롭히면서까지 열심히 사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그런 생각을 가끔 했다. 환자용 유동식을 먹어가면서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지, 내 몸을 묶어 가면서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지, 그럴 수는 있지만 그걸 미디어에서 주목하며 대단하다는 자막을 꼭 달아야 하는 것일까, 싶은 것이었다. 그런 삶이 정답이야, 그렇게 말해 오는 콘텐츠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서 반감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거 다 접어 두고 죽기살기로 공부해야지, 그런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한창 공부할 때인 아이들에게도, 죽기살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시절에도 아름답고 반짝이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런 것들을 다 놓치고 공부만 하면 과연 행복할 수 있느냐고. 그렇게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계속 하면 지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갈 수 있는 게 맞느냐고. 결과를 위해서라도 죽기살기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행복해야 일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누군가에겐 속 편한 소리에 불과할지도 모르고 나 역시 이게 정답이라 말할 수 없음을 알기에 그냥 별 말 하지 않고 지냈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수 있나, 내 인생도 정답을 모르겠는데.

 

 

 한참을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데, 오늘 그 발을 마주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카페에 들어가 면접과 자소서를 준비하며 수많은 질문들과 그 뒤에 숨겨진 불안들을 마주하자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더라.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이렇게 절박하게 노력하고, 절박하게 무엇인가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어떻게든 하고 싶은 것을 따라가면 길이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이제 나이를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뭔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어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려면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나이가 무슨 대수일까, 나와 겨우 한두 살 차이 나는 사람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고 저렇게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득 나와 정확히 몇 살 차이가 나나,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을 검색해 보았는데 악플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모르다가 상황을 파악하고, 그리고 왜 그런 글들이 달렸는지 알게 되니 불안은 조금 가시고 헛헛함이 남았다. 모르겠다, 아는 것도 없고 관심 분야도 아니니 뭐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지만, 충분히 그 정도로도 극도의 노력을 한 게 아닐까, 그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해내야 했던 것일까. 그게 올바른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올바르고 아니고를 다 떠나서, 그 선택에 대해서 비난할 자격이 있나. 과연 누구에게. 나와는 경우가 다르지,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는 치열함을 강요해도 되는 것일까. 치열함 이상의 치열함을 요구해도 되나, 무슨 자격으로. 부상 투혼이라는 말이 그동안 너무나 당연한 일로만 여겨져 온 게 아닌가, 아플 땐 쉬는 게 당연한 것인데 그 아픔을 참아내는 게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게 아닌가, 싶었다. 그 당연함이 얼마나 부담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

 

 

 더 이상은 아픔을 그저 참지 않는 사회였으면 좋겠다고, 아픔이 있으면 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몰아치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아. 한 순간이라도 쉬어 보자 하면, 뒤처질까 불안에  휩싸이는 곳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동안 해 왔던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예전이라면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다고,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오늘은 만든다고 되려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런 것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면 결국 내 자신이 갈려 나가는 게 아닐까, 싶어서 두려워졌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는 둘째 치고, 갈아 만든 콘텐츠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 콘텐츠들이 의미가 있으면 뭐하나, 내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한가,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단 한 가지인 사람이 아닌데, 이 일도 하고 싶고 저 일도 하고 싶은데 단 한 가지 일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야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걸 바꿔야겠다, 싸움을 지속할 기운은 더욱이나 없고.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라는 말을 자주 목격한 요즘이었다. 돈 많은 백수를 꿈꾸는 전시회가 열리고,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가 진심을 담은 덕담이 되어 버린 요즘, 열정과 극도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은 이미 구식이 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죽어라 노력할 거야, 그런 삶을 진심으로 꿈꾸는 사람들은 이미 찾아보기 어려워졌을지도 모르겠다. 자소서에 쓰기 위한 입 발린 소리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물론 여전히 꿈이라는 말 한 마디에 가슴이 설레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절실하게 원했던 꿈은 사라지고 그저 삶을 지탱해야겠다, 그것만이 절박한 목표가 되어 버린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고, 삶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할 돈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적당한 건강+ 적당한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을 얻어내기 위해, 우리는 그토록 절박하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삶을 지탱하는 것 자체가 절박한 목표가 되었다는 게, 어느 쪽이든 절박하게 노력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게 괴롭다. 치열하지 않게 살기 위해서 그 과정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