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0160831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게 필연이라면

호에호 2018. 1. 8. 00:17

세상에 대해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소하다 볼 수 있고 미처 생각지 못하고 넘어가기 쉬운 부분에서까지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도 어느 순간엔 무심결에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비하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람은 공통된 속성을 공유할 수도 있고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일을 통해 유추하여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이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상황도 이해해 보려 애쓸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모두 타인이기에, 완전히 같을 수도, 완전히 헤아릴 수도 없다. 그렇기에 타인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오만이기 마련이므로, 그것도 매우 위험한 오만에 불과하므로 내 감정, 내 이야기,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닌 이야기들을 제외하고는 그 모든 것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숙고하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은 그렇게 숙고한다 해도 결국은 놓치는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결국 인생은 자기 중심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타인을 위한 숙고에 그리 많은 시간과 힘을 뺏기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살면서 타인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그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해야겠지만.

 

상처라는 표현이 맞으려나. 비하와 조롱, 무시와 웃음거리, 혐오 등의 그 모든 것들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소하든 누가 봐도 도를 넘은 수준이든 상관없이 일단은 하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해야겠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타인이기에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상 완전한 예방은 불가능할 것이다. 완전한 예방이 불가능하다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아예 포기할 것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 상대를 조금이라도 불쾌하게, 불편하게 했다면 '너는 왜 이렇게 별 거 아닌 것에 예민해', '프로 불편러네' 하며 상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아, 누군가는 이런 말에, 이런 행동에 불편하고 불쾌할 수 있겠구나' 하고 빠르게 인정하고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한 것에 대해 진심을 담아 사과하면 된다. 사과로 부족하다면, 그에 맞는 대처를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이후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번 더 숙고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고.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기에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늘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그 다름에서 기인한 부주의들이 누군가를 다치게끔 하고야 말겠지만,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친 상대에게 그 책임을 돌리는 뻔뻔함과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기합리화와 방어 기제가 아니라, 자신의 부주의와 무지에 대한 인정과 진정성이 담긴 사과가 아닐까.

 

 

-------

한참 명료한 글을 쓰려고 노력했던 2016년 여름. 이제 와 보니 일기에서도 그런 느낌이 확 묻어나는구나,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네. 지금과 글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진 것 같지만, 여전히 생각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