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한참 전의 연인, 그리고 보내지 못한 편지

호에호 2017. 12. 24. 17:40

1. 20160606

 

 오빠. 꿈에서도 오빠랑 헤어진 꿈을 꾸고 일어나서, 정신 없는 와중에 일어나자마자 오빠 생각이 났어.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만나면 얼마나 만났다고. 처음 만난 것부터 합쳐도 보면 얼마나 봤다고. 그리고 아직 내가 오빠를 미워하는 건 아니니까. 사실은 미워하는 것보다 아직은 좋아하는 감정에 가까우니까, 오빠 말대로 우리가 이렇게 헤어질 수 있어서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처음에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그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지. 오빠랑 내가 이어질 수 있는 확률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까, 내 연애 상담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정도의 그런 좋고 편한 오빠 동생 사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이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진심을 담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 사람 어떠냐고 오빠한테 먼저 물어볼 수 있을 거 같아.

 

 그래, 오빠 말대로 그 선에서 그만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그만둘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 아직까지는 오빠가 좋지만, 어느 순간에는 이게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런 사람을 빨리 만나서, 좋은 선택을 하게 해 줬던 오빠에게 고마워하고, 오빠를 이성적으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남겨 둘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오빠에게 말했지만, 나와 그렇게 잘 맞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그리고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 한들, 그 사람과 내 마음이 통할 수 있을까. 오빠도 답답했겠지, 오빠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에 있어 내가 그에 적절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아서. 나도 그렇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괴로웠어.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걸 좋아해. 오빠에게는 특히 더 그러고 싶었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의미로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큰 사람이었으니까. 오빠와 그러한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마다, ‘그렇구나라는 말밖에 남발할 수 없어서, 그게 슬펐어.

 

 오빠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궁금해 했지.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어느 정도 드러내 보였고, 오빠는 같은 관심을 쏟아보려고 노력했던 것을 느꼈어. 그렇지만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던 것 같아. 같을 필요는 없다 생각했지만, 오히려 다채로운 게 더 재미있을 수도 있겠지만, 오빠는 그렇게 깊이 있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 굉장히 가볍게, 나와 굉장히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 때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오빠와 이런 이야기를 계속 꺼내봤자 오빠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구나, 그리고 나 또한 오빠에게 그런 이야기를 신나서 하지는 못하겠구나.

 

 우리는 참 많은 부분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을 거야. 일상적인 대화와 소소한 일상에 행복을 느끼고 살아가는 나. 뭐 하나에 미친 듯이 파고드는 게 아니라, 바쁘다 해도 주변의 것들에 관심을 놓지 않으려 하는 나. 굳이 나이로 인한 인생에 대한 마음가짐 차이를 따지지 않아도, 우린 다른 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었어. 거기에 나이로 인한 마음가짐 차이까지. 오빠와 만나기 전, 그 날 내가 했던 정말 많은 걱정들이, 쓸데없는 걱정은 아니었구나. 어떻게 보면 다 들어맞는 걱정이었구나, 싶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건, 그 걱정들이 현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렇게 상처받지 않았다는 것. 그래도 시작하지 않았으면 느끼지 못했을 많은 감정을 느끼고 생각들을 하고, 그래서 좋았다는 것. 시작했다는 사실에 있어 후회는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또 문제이기도 하지. 여전히 좋다는 것. 그래서 더 계속하고 싶다는 것. 과거라 하기에는 너무 최근의 일이고,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기에 이렇게 표현하기도 뭐하지만, 원래 지나간 일들은 미화되기 마련이거든.

 

 분명 나도 말로 꺼내기는 무서워서 꺼내지는 못했지만, 그런 생각을 했지. 그 생각을 할 때의 나, 되게 힘들었던 것 같은데. 고민을 많이 하고 우울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들은 지금 나지 않고, 조금 더 해 봤으면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밖에 들지가 않아.

 

 지금에라도, 오빠가 술김에라도, 나에게 다가온다면, 그 때 내가 취한 상태든 아니든 아마 나는 오빠를 밀쳐내지 못할 거야. 그래야 우리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차마 그 순간에 있어서도 이성적이지는 못할 것 같아. 아직 우리 관계에 있어서, 나는 그렇게 이성적이지 못하거든. 아니, ‘그렇게라는 말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좋을지 몰라. 생각하고 싶지 않고, 생각이 잘 안 돼. 내가 그렇게 인생을 살아오긴 했지만, 그냥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싶어. 그런데 인생에 살아가는 데 있어 오빠와 나의 압박감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만큼 오빠도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으니까, 진심으로 말하는 오빠의 말을 어떻게, 부정할 수가 없었어.

 

 난 그 날, 오빠의 진심을 느꼈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렇게 말했어. 진심을 느꼈고, 그게 맞다 생각하면서도 지금 마음 한 편으로는 그게 아닐까, 지금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여전히 불안해. 불안하면서도 어쩌겠어, 불안해 해 봤자 내 손해인 걸. 그냥 그 순간의 내 감을, 내 느낌을 믿어보기로 했어.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혹시나 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봐 온 오빠는, 혹시나를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해. 사실 혹시나해도 좋겠다, 생각해. 사실 지금 나는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도 오빠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 그렇게 해야 지금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고, 그렇게 해야 내가 오빠를 계속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게, 지금의 감정적인 상태를 벗어나서 바라보면, 그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거야.

 

 생각을 이렇게 하면서도, 나는 할 만큼 오빠에게 다 표현을 하고 할 만큼 많이 망설였으니까. 그래도 오빠가 아니라 느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리고 그 오빠의 진심에 나 또한 넘어갔으니까. 막상 오빠를 만나면, 나는 분명 아무렇지도 않아 보일 거고, 또 그렇게 느낄 것 같아. 오빠는 나에게 제일 편하면서도 가까운 27살이 될 거고, 오빠에게 나도 제일 가깝고 편한 스무 살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냥 서로의 나이 대의 사람을 만날 일이 없으니까, 그냥 그럴 때 서로에게 이야기를 묻고 들을 수 있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스스럼없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때가 맞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멈출 수가 없어. 좋은 연인이 될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하고 있던 오빠에게 내가 괜히 너무 많은 것을 털어놓아서 이렇게 일찍 끝을 본 것이 아닐까. 조금만 더 괜찮은 척 해 볼 걸, 너무 솔직해지지 말 걸. 그냥 모든 인간 관계에서 그래 왔듯이, 적당히 솔직해지고,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 걸. 지금 상대가 주는 것에 만족할 줄 알 걸. 상대를 이해해 보려고 할 걸.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날, 술을 그렇게 마시지 말 걸. 아니, 차라리 그냥 가지 말고 수업이나 들을 걸. 취했으면 혼자 나오지 말고 그냥기대서 앉아 있을 걸. 아무리 서운했어도 그런 말로 표현하지는 말 걸. 그렇게 대책 없이 혼자 가지 말 걸. 남의 연애 상담이 중요한가, 내 문제가 중요하지. 그러지 말 걸.

 

 내 그런 행동들 때문에 오빠가 그런 결론을 이렇게 빨리 내리게 된 것 같아서 후회하는 게 많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후회하고, 또 후회를 하다가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진심으로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낼 수 있겠다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게 아닌 순간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빠는 내가 안 나올까 봐 걱정했지만, 이제 오빠랑 일상적인 연락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게 아니면 오빠를 볼 일이 없으니까, 그게 아니면 오빠랑 말할 일이 없으니까, 그래서 가고 싶다 생각하는 내가 문제야. 시험이고 뭐고 제쳐놓고 가고 싶어 하는 내가 문제야. 아마 안 가고 공부를 붙들고 있다 한들,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거야. 안 간 내 자신을 후회하고 있을 게 분명해.

 

 

2. 20170122

 

 말도 안 되지. 왜 요즘 들어 또 보고 싶을까. 관대해도 이렇게 관대할 수가 없다, 그치?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어. 그 사람 참 대단하다고. 어떻게 그렇게 좋아할 수 있냐고. 상대가 그렇게 차가워도,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렇게 돌아섰던 상대를, 어떻게 여전히 그렇게 좋아할 수 있냐고. 그런데 지금 보니까 나는 뭔가, 싶어. 그렇게 그 순간에 끊어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끊어내지 않았을 것 같아. 꽤 긴 시간 동안. 내가 더 많이 좋아해서, 힘들었다 해도, 그렇게 금방 끊어내지는 않았을 것 같아. 나는 끊어내는 것 같은 거 잘 못하니까. 그런 말 꺼내는 거 잘 못하니까. 지친다 해도 좋아했으니까, 그래도 꽤 오래 버티지 않았을까. 물론 그 사람만큼 길게는 아니었을 거야. 그 정도로 헌신적인 사람은 아니니까. 그래도 그렇게 더 길게 만났으면, 더 지쳐서 다시 이을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을까. 아니면 돌아오기를 더 간절하게 바라는 관계가 되었을까. 잘 모르겠네. 어차피 그 때 그렇게 끝났는데, 돌아보면 뭐해. 그 때 우린 그런 선택을 했고, 한참이나 시간이 지났는 걸.

 

 왜인지는 알 것 같아. 그냥 하는 말들이, 툭툭 던지는 그 말들이 너무 귀여워 보여서. 왜 내 코드에 맞고 그래. 쓸데없이 까다로워서, 코드에 맞는 사람 별로 있지도 않은데. 왜 귀엽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그 순간에는 질색했던 것들이, 왜 지금 보면 귀여워 보일까. 그 철없음이 좋아. 왔다 갔다 하는 그 갭이 좋아. 나는 안다고 말하기에는 안 본 지 너무 오래되었는데, 안다고 말하기엔 알아가는 시간이 너무 짧았는데. 그래도 가끔 왜 몇몇 순간마다 내가 보았던 모습들이, 내가 아는 모습들이 보이는 걸까. 그 순간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그 모습들도, 왜 그 순간과 겹쳐 보이며 귀엽게 보이는 걸까. 모르겠지만, 요즘 가끔 난 웃음 지었어. 한동안은 목록 창에 뜨는 것만 봐도 마음이 덜컥거렸는데, 이젠 그냥 그런 생각도 하고, 웃음도 짓고. 시간이 흐르긴 했나 보다, 싶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꿈을 갖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는지 몰라. 모르게 된 지 너무 오래되었어. 그냥 가끔 올리는 글을 보긴 하지만, 그건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는 걸 알아. 겉으로 보여지는 것일 뿐,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 겉으로 보이는 걸 상당히 의식하니까.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알아. 내 관심도 반길까. 안 반길 것 같지는 않은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반기면, 그건 싫을 것 같다. 그래도 조금은 특별했으면 좋겠어. 많이는 아니었으면 좋겠고, 조금만. 다른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나만 느끼는 그런 미묘한 차이. 너무 미묘해서, 나조차도 이게 차이가 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생각 탓인 건가 그냥 그런 차이. 그냥 시간이 지나도, 나한테는 그런 미묘한 차이를 뒀으면 좋겠는데, 그건 욕심인가.

 

 나는 아마 그런 차이를 아마 내내 둘 것 같아. 다른 사람을 품어도,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어도, 그래도 그 미묘한 차이는 있을 것 같아. 그 미묘한 차이를 알기는 알까. 그게 전해졌는지, 그걸 느낄 만큼의 촉을 할당하고 있는지. 사실은 궁금할 때가 있어. 어느 순간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못했던 이런 수많은 이야기들을. 그 땐 양쪽 다 훨씬 더 성숙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타인이 보기에 괜찮은 사람 말고, 서로의 시선에서 봤을 때 괜찮은 사람. 그런 사이가 되면, 가리는 것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그냥 그 때보단 조금 더 괜찮아지고 있는 나를 보여주고 싶어서일까. 더 괜찮아지고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 더 나빠진 건 없는 것 같긴 한데, 괜찮아졌는지는 모르겠다. 아직은 내가 꿈꾸는, 그런 괜찮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아직은 그런 순간을 맞이하고 싶지 않아. 그럴 기회조차 없겠지만.

 

 아는 건 없긴 한데, 잘 사는 것 같아 보여. 잘 산다는 표현은 이상한가,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냥 겉으로만 행복하고 남들 보기에 행복하고 있어 보이고 그런 거 말고, 그런 거 있잖아. 마음 깊숙이 채워지는, 그런 충만한 행복. 그런 건 행복한 순간들이 가끔 채워진다 해서 오는 행복이 아니거든. 보장되는, 믿음을 가지는 행복의 요소가 있어야 오는 것 같아. 그게 사람이든, 꿈이든, 일이든.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지금 그 셋 중 어떤 것도 제대로 없어서, 그렇게 충만하지는 못해. 셋 다 찾으려고 애쓰는 중이야. 나는 사람에서 찾는 게 가장 쉬울 줄 알았어. 아직 내 나이에, 내 경험으로는 뒤에 것들로 충만해지는 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아.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나 그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어. 꺼내고 싶었던 적도 없어.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

 

 그 느낌이 너무 그리워. 그 때의 나에 비하면 나는 많이 솔직해졌어. 내 이야기를 편하게 해. 내 글을 보여주는 것도 예전만큼 두렵지 않아. 요즘은 사실 보여주고 싶기도 해. 그런데, 그 솔직함이 있는 그대로 꺼내는 솔직함일 때도 있는데, 그냥 이야깃거리로 꺼낼 때가 더 많은 것 같아. 웃음거리로, 지나가는 이야기로. 진지한 이야기든 가벼운 이야기든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가볍고 간결하게 이야기하는 그런 분위기를 꿈꾸는 건 맞는데, 상대의 반응을 신경 쓰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하거든. 그냥 나는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냥 내 이야기를 꺼내 놓고. 상대도 그렇고. 그냥 그런 자유로운 거.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솔직히 나 뭐라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털어 놓았던 마음이 그리워. 잘 들어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공감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모르니까,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냥 이렇게 무작정 흘러가는 대로 두면, 만날 수 있나. 너무 그 기분이 그리워서, 그 분위기가 그리워서. 그립기도 한데 너무 필요해서. 나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지 말고, 어떻게든 찾고 싶었어. 그래서 내 나름대로 열심히 찾아 다녔던 것 같은데, 없었어.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찾기도 지쳐서, 그저 두기로 했어. 그러다 보면 오겠지. 안 오면, 어쩔 수 없지, 생각해.

 

 이것도 흔적 같은 건가. 나는 왜 내가 하는 연애에 있어, 내가 더 좋아하는 연애를 할 것만 같지. 내가 더 좋아해서, 왜 내가 더 상처받을 것만 같지. 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시작할 생각도 안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왜 나를 외롭게 할 것만 같지.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들어. 그걸 알아도, 나는 조금이라도 통하면 시작을 하겠구나, 생각했어. 그건 사실 온전히 흔적 탓은 아니야. 요즘 겪은 일들이랑, 그냥 내가 느낀 감정이 겹쳐지면서 그랬어. 이런 순간에 조언해 주는 사람이 되어 주길 바랐는데, 멀어. 너무도.

 

 보고 싶다가, 말 거야. 막상 보면 이런 감정도 안 들 걸 알아. 늘 보기 전에는 많은 생각을 했지, 그런데 생각을 많이 하면 많이 한 날일수록 아무 것도 없었어. 오히려 내내 지우고 부정했을 때, 뭔가가 있었어.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니까, 기대를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그런데 이렇게 주절거려도, 이건 환상이지. 그냥 가상의 청자에 가깝지, 되는 것도 아니라 생각하니까 기대 안 해. 그냥 미화된 기억 속에 있는, 그냥 청자로 남아 줘. 가끔은 주절거리고 싶은 날도 있을 수 있으니까. 아직 내가 딱히 명확하게 주절거릴 상대가 없어서 그래. 그러니까 좋은 사람으로 남아 줘야 해. 그래야 내가 주절거릴 수 있잖아. 내가 너무 미워하게 되면, 떠올리기만 해도 상처받으면, 나 더 이상 주절거릴 사람이 없잖아.

 

 이게 다 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래. 그냥 가볍게 연애하고 마는 드라마. 그냥 보면 너무 달달하고, 그래서 나도 연애하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끝나는 드라마면 되는데. 왜 다들 전생에 이어 현생까지 이어지는, 몇 백 년을 뛰어넘는 그런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난리야. 기억을 지워도 기억해 내는, 그런 사랑을 하고 그래. 절절한 사랑. 왜 그런 걸 하고 그래. 나는 그런 운명적인 사랑 그런 건 꿈꾸지 않는데, 내 본연의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고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만나고 싶어. 달달한 것들 하고 싶은 것보다, 그냥 그런 대화가, 그런 분위기가 너무 그리워. 그런 드라마를 보니까, 그런 상대를 만나고 싶어. 내 마음을 다 줄 수 있는, 다 열어 놓는 그런 연애. 그냥 달달한 것만 하는 그런 거 말고, 정말 날 충만하게 만들 수 있는 연애. 조엘과 클레멘타인 같은 연애도 하고 싶고, 미도리와 와타나베 같은 대화도 나누고 싶어.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연애하는 드라마를 봐야 하나.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부럽겠지. 하얀 경복궁을 걸으며, 그런 대화를 나누는 상상을 했어. 예전엔 그런 상상을 하면 늘 떠올랐는데, 이젠 새로운 사람을 떠올려. 그런 로망은 아마 그 덕분이니까, 가끔은 생각이 나겠다. 충만한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고 했잖아, 그렇긴 한데, 그게 사람 때문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사람 때문에 충만하게 행복해 하는 걸 보면, 내가 더 쓸쓸해질 것 같아. 사람이 있는 건 뭐 괜찮은데, 충만한 행복 정도는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너무 부러울 것 같아서. 그게 솔직한 마음이야.

 

 몰라 그건 왔다 갔다 해. 뭐 될 대로 되라지 뭔 상관이야 생각할 때도 많아. 그냥 내 인생이 잘 흘러가면 좋겠어. 주절거리다 보니까 그래도 기분이 좋아진 것 같기도 해. 주절거리다 보니까 보고 싶다는 생각은 더 안 들어. ㅎㅎㅎㅎㅎㅎㅎ정신 승리라구? 그런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