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017년 상반기 일기
호에호
2017. 12. 13. 02:59
자기 전, 지하철 타고 다닐 때 등 틈틈이 에버노트에 썼다. 끝마무리가 없는 의식의 흐름 기법의 일기들이지만, 그 순간의 기억이 남아 있어 아끼는 글들.
1. 20170415 - 신해경 나의 가역 반응
신해경 노래를 듣는다. 신해경 하도 좋다는 사람이 많길래 들었을 때는 별로라 생각했는데, 어제 도저히 듣고 싶은 노래가 없길래 들었다. 그런데 너무 좋더라. 빨리 밤이 와서 불 꺼 놓고 어두운 분위기에서 혼자 남아서 신해경 노래를 듣고 싶다. 사람과 있어야 에너지가 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혼자 있어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이 있다는데. 후자인가 보다. 개인적으로 5:2의 비율은 지켜줘야 하는 것 같다. 그 비율이 어떤 쪽으로든 치우쳐 깨지면, 어느 면에서든 힘이 든다. 너무나 쉴 시간이 없다 느끼거나, 너무 무료하고 지겨워 힘이 없다고 느끼거나.
뭐 언제나 기운이 펄펄 샘솟는 에너자이저 타입은 아니지만, 시험 기간엔 늘 진이 빠져 있다. 사람과 소통하며 쓸 에너지조차 남아 있지 않다. 늘 그래서, 일주일을 정리하고 하루 면학을 하고 집에 갈 때나, 도서관에서 집으로 갈 때나. 늘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입을 열고, 밝은 척할 기운이 없어서.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기운이 없어서. 이번 주는 내내 그런 상태였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니 더 힘들다 느꼈다. 대화를 성심성의껏 할 기운 따위 없고, 차라리 그 시간에 나만의 힐링 타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해서 그걸 티내서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고. 그냥 그랬다.
사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런 날에도 사람 때문에 에너지가 완전히 충전되곤 했다. 고등학교 때 유난히 힘들고 진이 빠지는 자습 시간이면, 혼자 공부를 던지고 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찾아갔으니까. 그때의 쉬는 시간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그립다. 그 복도도, 운동장을 돌던 것도.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가지만, 여전히 만나면 그런 존재. 모르겠다, 오래 만났지만 그 동안 단 한 번도 만나고 나서 기운이 빠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늘 주체가 안 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곤 했던 것 같지. 요즘 그 짧은 만남에도 너무나 반가웠다. 그냥 나에겐 그런 존재. 딱히 깨질 것 같지 않은.
기운이 빠지고 진이 빠진 날에는 그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하나 보다. 그냥 그런 생각조차 안 드는. 마음이 끌리고 발길이 끌리는. 고등학교는 매일매일 공부가 일상이었고, 그 중에서도 유난히 지치는 날들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기억하는 건. 그런 사람들이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잠시도 홀로 지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 사람이 없으면, 저 사람이. 그냥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발길이 끌리는 사람들이 천지여서, 그냥 매 하루의 마무리는 즐거울 수 있었다. 캄보디아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과 함께하는 건, 에너지 소모가 아니라 에너지 충전인가 보다. 그러면 나는 어떤 쪽에 가까운 사람이지. 알 수 없다.
시험이 끝나면, 빨리 만나야지. 그 사람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말이 많아지고, 시끄러운 사람으로 변하게 만드는 사람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이미 떠오르는 사람이 많다. 언제 다 보나 싶다. 그 사람들이 다 모여 있던 그 곳은, 정말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공간이겠구나 싶다. 이젠 그 사람들을 떠나 사는 생활에 적응이 된 게 맞고, 떨어져 살며 어찌 해야 힘든 날, 혼자가 된 날을 버틸 수 있는지도 이미 다 터득했지만. 그렇지만 문득 그 순간을 떠올리며 비교하다 보니,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좋은 시설도 의미 없는 걸.
집에 가고 싶다. 무조건적인 편안함과 게으름이 있는곳으로. 쉬고 싶다.
2. 20170416 - 신촌의 어느 카페
오랜만에 A를 왔다. 작년 6월쯤 온 것 같은데. 신촌엔 여전히 그 때의 기억이 묻어 있는 장소들이 있다. 처음 만났던 그 때 그 곳. 그리고 아마 헤어지고 처음 다시 봤던 곳도 아마 이 곳이었던 것 같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처음 어디인지 몰라서 헤매던, 신촌이라는 곳 자체가 낯설었던 스무 살의 내가 있던 곳. 신촌을 좋아하게 했고, 신촌에 정 붙이게끔 만들었던 사람이, 이젠 더 이상 신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나를 조금 슬프게 했었다. 다른 사람과 쌓은 신촌에서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이라 해서. 물론 나에게 신촌은 그 때의 기억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과의 수많은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지만. 그리고 지금 나의 주 공간이기에 정이 들지 않을래야 정이 안 들 수 없는 공간이지만. 무슨 일로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조금만 파헤쳐도 나에겐 이런저런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인데. 그 쪽에겐 그런 마음이 없나 싶어서였나. 모르겠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고마운 것과 미운 게 뒤섞였다. 늘 그랬듯이. 요즘은 미운 게 더 많았지만, 알고 있다. 완전히 미워할 자신이 없다는 걸. 완전히 미워하지 못할 사람이란 걸. 미워하지도 못할 거면, 생각이나 나지 말지. 페북 팔로우를 취소했더니 인스타를 팔로우해놔서 또 문제다. 문제가 많아. 도대체 왜 그랬나 싶다.
가을방학 그 와중에 사랑한다. 가을방학을 들으면 가을방학을 좋아했던 네가 떠오른다. 너를 좋아한다, 잠시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나에게 한없이 편하고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 아까 00대 00학과 이야기를 들으며, 그 과 사람들이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막 들리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 많은 곳이라 했지만. 넌 아니니까. 그냥 너에게 연락하면, 늘 그랬듯 반겨줄 것을 안다. 소홀해서 미안하지만, 너 역시 나에겐 안전지대 중 하나다.
3. 170524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니까, 마냥 즐거워야 하는 게 맞는데. 마냥 즐겁진 않다. 사실 막상 하면 즐거운데 한꺼번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생기니 부담으로 작용하나 보다. 힘든 와중에 다이어트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고 아 그 와중에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너무나 많고.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에 대한 의문이 문득 들었더랬다.
축제 무대를 설치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살면서 무대에 제대로 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구나. 사람들은 밴드다, 춤이다, 연극이다 뭐다 해서 무대에 한 번쯤은 서 보는데, 난 아직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구나. 무대를 좋아하지만, 그리고 무대 주변엔 많이 있어봤지만, 무대에 올라본 적은 없구나. 이 시기 아니면 무대에 오를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한 번쯤은 해 볼 걸, 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나만큼이나 하고 싶은 걸 다 해 보면서 지낸 사람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꾸물꾸물 무엇인가를 하며 지냈다. 그 꾸물거리는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지, 생각한다.
무엇을 굳이 배워야 하나, 나는 그냥 그 시간들을 모두 반짝였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사람들도 만났고, 웃었고, 그 시간만큼은 마음을 나눴다. 지난 후 나에게 대부분의 기억은 반짝였던 기억으로 남지만. 심지어 방 속에서 그냥 혼자 영화를 보고 늦잠을 자고 뒹굴었던 기억마저도 미화를 하려면 미화되는 마당에 무엇인가를 했고 그 속에서 행복하다 느꼈던 기억이라면 이 시점 와서 반짝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많은데,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안 따라가면 인생의 낙이 너무 줄어들고 내 인생이 무의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
4. 170622
그 사람이 생각나는 노래가 정해져 있다. 알면서도 듣고 싶어서 틀었다. 보고 싶은 사람. 취해서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러는 게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아는 나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우연히 마주치기를 꿈꿨었는데, 오히려 우연히 마주쳤을 땐 보지 못했다니 이건 아이러니. 보고 싶은 사람. 조금 더 취하고 싶지만 취한다 한들 그 사람까지 손을 뻗지 못할 거야.
애써 나빴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전화를 걸었는데 서로 하고픈 말이 없어서 아무 말도 내내 안 하다가 그냥 끊자 말했던 날,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 했었을 때 귀엽고 하는 짓이 사랑스럽긴 한데. 말을 잘 듣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을 때. 결국 끝까지 더 만나보자는 나에게 헤어질 것이 낫다고, 결국에 내 입으로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게 했을 때. 그것 말고도 수없이 많이 나를 당황시켰던 말들과 헤어진 뒤 우리가 했던 전화. 나빴던 순간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순간들을 기억하지만 그 사람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한없이 솔직해지는 그 분위기. 다른 이에게서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그 기분.
지나고 나서 알았다. 그 사람을 좋아했다는 것을. 그게 진심이었다는 것을. 오래도록 품었다. 이제는 가실 때도 되었지만, 도무지 가시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데에만 능숙하게 되었지만, 전혀 아무렇지 않았던 게 아닌. 그 사람의 행복을 빈다. 그렇지만 그래도 너무 행복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5. 170622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위안을 찾았다. 내가 최근 가장 의지하게 된, 의지라고 말하기는 어렵더라도 만나고 나면 편안한.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 동안 마음의 우울이나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었던 게 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싹 가셨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이 길, 마냥 행복해.
그리고 또 만난 다른 사람들. 나에게 언제나 영혼의 파트너 같은 사람. 늘 곁에 있으면 생각없이 웃게 되는. 어떻게 이렇게 코드가 잘 맞을 수 있을까 신기한 사람. 오랜 시간을 봤지만 여전히 만날 때마다 이 사람과 코드가 잘 맞는 것에 감탄하곤 한다. 겉으론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론 따뜻하고 여린 사람. 오래도록 좋아하고, 곁에 두고 싶은 사람. 그냥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많이 고맙고, 의미 있는 사람. 오늘은 다시금 확인하는 그런 날이었다. 이 사람과 이렇게 오래도록 가까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없었다면 나는 많은 순간에서 의지할 곳을 찾지 못했겠지. 말하지 않아도 너는 나에게 속으로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웃음을 안겨주는 사람이었다. 고마운 사람. 네가 만약 이성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면, 나는 너에게 반했으리라고 생각했다. 너만큼 내 코드와 잘 맞는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까. 오래 보니까 닮아 가는 것 같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우린 오히려 편해서 꺼내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엔 꺼내놓곤 했으니까.
6. 170628
이 정도 되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가 보다 싶다. 할 만큼 했으니 더 이상 하지 않을래.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싶어. 쓸데없는 대화로 소중한 나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늘 밖에서 집에 들어가고 싶었던 적이 없는데, 요즘의 자리는 내내 집에 가고 싶어지는 자리뿐이었다.
집에서 수상한 파트너나 봐야지.
너무 강렬한 걸 느껴서 그냥 작은 건 눈에도 안 들어오는 걸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눈을 빛냈던 사람들이 없었던 게 아니었으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접긴 했지만 눈을 빛내고 발을 구르고 설레 했던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차라리 그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 모양일까, 궁금했다. 차라리 저지르는 편이 속 편했다. 하고 싶을 때 내킬 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뭐 이거는 마음이 불편하고 끝나지도 않고 이게 뭐람, 싶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굳이 찾아야 하나 싶다. 언젠가는 오겠지라고 믿으면 되지 않나 싶다. 안 오면 뭐 어떠냐고 생각했다. 분명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많은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안정이 뭔지도 모르겠고. 내가 겪었던 건 오히려 나를 괴롭힌 순간이 더 많았고.
차라리 그냥 이건 다 끊어 버리고 나다니는 게 낫지 않나 생각했다. 이미 벌려 놓은 일이 많아서 허덕이는 중이라 더 벌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지만. 잠깐이라도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자리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이미 나는 내 곁에 있는 인연으로 만족하는 중이었다. 충분히 따뜻하고, 안정적이다. 누군가를 더 좋아하고, 그것으로 인해 가슴 뛰는 일은 분명 행복한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괴로운 일이기도 해서. 안정과는 거리가 먼 일이라. 이제 더 이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 마음이 가서, 어떻게 주체가 되지 않는 사람이 아니면. 그냥 생각해 보니 최근에도 없었던 게 아니었다. 그냥 딱히 닿을 기회가 없었던 것뿐.
7. 170701
이 순간에 네가 있어 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너의 위로 방식을 가장 사랑해.
난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해?
나는 나의 편에 서 주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