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라디오

호에호 2017. 10. 22. 21:23

 2014년 1월 4일에 방송했던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의 마지막 방송의 다시 듣기를 들었다. 이 방송을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수없이 들었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지 대충 알게 될 정도로 정말 많이 들었는데, 그것도 다 야자할 때 이야기니 마지막으로 들은 게 꽤 되었다. 그냥 오랜만에 듣고 싶었다. 사람들 속에서 늘 북적거리다가, 북적거릴 일이 줄어들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우울하고 무기력해져서, 라디오가 듣고 싶었거든.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는 것도 집중에 방해된다고 공부할 때는 음악 듣지 말라는 이야기가 판치지만, 사실 공부할 때 라디오를 진짜 많이 들었었다. 공부를 놓고 나서는 라디오도 함께 놓아 버렸지. 졸릴 때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면 잠이 깨서 들었던 것도 있고, 공부하기 싫어 죽겠는데 공부는 해야 하고, 그런 순간에 라디오를 들으면 그래도 공부를 할 만해지니까, 그래서 라디오를 들었다. 처음 라디오를 시작하게 된 건, mp3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음악은 듣고 싶고, 음악을 들을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전자사전에 라디오 기능이 있었어서 라디오를 틀었었다. 그때는 라디오에서 이야기 나누는 부분은 듣고 싶지 않아서 노래 나오는 쪽으로 계속 주파수를 옮겨 다녔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그 이야기하는 거 자체가 재미있어서 그렇게 라디오에 빠져 살게 되었다. 하루종일 공부하는 날은 거의 하루종일 라디오를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공부할 때 잠이 올 때면 아침 라디오부터 들었던 날도 있었지. 사실 아침 라디오는 내 취향이 아니었던 데다가, 아침에는 국어 같이 라디오를 들으면서는 공부할 수 없는 과목을 주로 공부했기에 아침 라디오는 그렇게 많이 듣지 않기는 했지만.

 

 하여튼 하루종일 자습하는 날에는 컬투쇼부터 시작해서 12시에 끝나는 라디오까지 주구장창 들었던 날도 있고. 평소에도 8시부터 11시까지는 라디오를 들었던 것 같다.  기본으로 들었던 게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 조합이었고 그 이전에 저녁 먹고 잠이 온다 싶으면 박소현의 러브 게임을 들었다. 그렇게 주구장창 라디오 듣는 것을 누군가는 집중에 방해되는 일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름대로 나에 맞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잘 찾았구나 싶어서 오히려 현명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는 사람에게, 라디오는 그 무기력함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아니라 일상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돌파구가 되어 주었던 게 분명하니까. 물론 그 시절을 괴롭게가 아니라 즐겁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라디오보다는 실제로 내 곁에 늘 있었던 사람들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라디오도 한 몫했겠지. 

 

 지금도 장기하와 얼굴들을 좋아하지만. 장대라의 막방이 끝난 지가 꽤 된 지금 시점에서는, 장디의 이미지가 흐려지고 그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느낌만이 남았다. 여전히 장대라가 주었던 느낌은 남아 있지만, 장대라의 장디와 지금 내가 접하는 장기하와얼굴들의 장기하는 그냥 다른 사람으로 다가온달까. 장기하와 얼굴들의 장기하는 흔히들 말하는 '장교주' 같은 느낌이랄까. 가까운 것이라기보다는, 저 멀리 내가 동경하는, 좋아하는, 모두가 열광하는 그런 아티스트의 느낌이라면, 그냥 장디는 곁에서 무심하게 한 마디씩 던지는 아는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뭐라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하루에 거의 두 시간씩 목소리를 듣는 관계라는 것, 그렇게 실제 보지는 않아도 매일매일 그 목소리를 듣고 일상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대단한 유대감을 형성했던 것 같다. 라디오에서는 청취자들을 '가족'이라고 부르기까지 하니까. 그리고 그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매체이니까. 그걸 절실하게 느꼈던 게 장대라의 마지막 방송이었다. 오랜만에 들어도, 마지막 선곡을 소개해주는 그 순간은 여전히 마음이 이상했다. 늘 담담했던 사람이 전해 오는, 목소리를 떨면서 전해 오는 진심. 장기하와 얼굴들을 생각하면, 늘 신나고 흥이 나는 노래만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담백하게 슬픔을 노래하는 곡들도 많다. 그 담담함과 담백함을 여전히 사랑해.

 

https://www.youtube.com/watch?v=Cx4Y68LO_t8

 

이건 이 글 쓰면서 장기하와 얼굴들 노래 들어야겠다고 찾다가, 처음 들어 본 커버 영상. 요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박정현 버전으로 열심히 들었는데, 그 와중에 딱 찾은 장얼의 커버 영상. 너무 좋아서 할 말이 없는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