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는 생각들
첫 방송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내 세계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싶은 욕망.
듣고 싶은 수업을 들으면서 했던 생각은, 끊임없이 인풋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필요는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적어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사람이 게을러지려면 한없이 게을러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때이기도 했고. 늘 뭔가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에 대해 일종의 죄책감을 느꼈고, 그러한 상태를 불편해 하는 편이었다. 이제는 그런 상태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 같아서, 밑도끝도 없이 게으른 사람이 될까봐 조금은 두려운 상태가 되었다. 그러기 이전에 그동안 내가 쌓아 왔던 습관, 부지런까지는 아니지만 시간을 채워서 쓸 줄 알았던 사람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해지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뭉툭하고 둥글둥글한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지금의 시장이 하는 일이라면, 인디는 그 예리함과 거친 감각을 잃지 않는 존재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http://www.indiepost.co.kr/post/122
마지막에 인용된 말 또한 황인찬 시인이 쓴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공감했던 말이다.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요즘에야 이유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좋으니까 듣는 거지. 한때는 좋아하는 인디 뮤지션을 늘려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이런저런 새로운 음악을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런 건 없다. 한창 그렇게 열심히 찾았던 건 고등학교 때였는데, 그때는 내가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유흥거리가 음악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좋은 음악을 찾는 게 일상의 낙이었으니까. 새로운, 마음에 꽂히는 뮤지션을 찾아야겠다는 것은 강박은 아니었다. 음악을 하루종일 듣다 보니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질리기 마련이었고, 그래서 새로운 음악을 찾아 나섰던 것뿐. 그리고 일주일 동안 들을 음악을 주말에 mp3에 다운로드받아서 갔기 때문에, 다음 한 주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주말에 좋은 음악을 충분히 발굴할 필요가 있었다. 그 시기를 그렇게 보내지 않았다면, 지금만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매일매일 학교 안에서 하루종일 야자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주말이면 늘 도서관을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지금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을 좋아하고 있지 않겠지. 라디오라는 매체 자체에 관심이 없었을 테고, 지금처럼 음악을 끼고 살지도 않을 테다.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그다지 친숙하게 느끼지 않을 테고, 지금처럼 책 제목을 구경하고 신간 도서 구경하는 것을 즐기지도 않을 테지.
하여튼 본론으로 들어오자면, 인디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무렵, 이런 이야기를 썼던 게 기억이 난다. 인디 뮤지션이 수없이 많은 만큼, 그만큼 다채로운 색깔이 있어서 좋다고. 각 밴드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고, 그 색깔이 변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유지되는 것을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대중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좋았었나 보다. 애써 대중들에 맞추기 위해 자신들의 모습을 둥글둥글하게, 뭉툭하게 깎아내지 않는 게 좋았었나 보다. 이제는 어떤 새로운 뮤지션을 찾아 나서기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이미 알고 있는 뮤지션들의 신보를 기다리는 쪽에 더 가까운데. 신보가 나올 때마다 이 뮤지션은 이런 음악을 들려주겠지,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게 있다. 물론 인디음악 시장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보컬이 있고 그 팀만의 색깔이 있겠지. 그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말을 못하겠지만, 인디 음악을 계속 좋아하다 보면 그 색깔을 알아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을 때가 많다. 무한히 넓은 도화지에 색을 칠해나가는 기분이랄까. 색을 채우는 건 내가 아니니, 색을 채운다는 표현보다는 색을 알아간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빨강'이라는 이름은 배웠지만 막상 '빨강'이 어떤 색인지 모르고 있는 아이가 빨간색을 직접 마주했을 때의 기분과 비슷할까. 요즘 가장 마음에 드는 색은 'Lana del rey'인 것 같다. 지금 듣고 있는데 너무 좋다.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하는 걸까 그런 것들이 궁금해셔서 좋아하는 뮤지션의 인터뷰는 자주 찾아보는 편인데, 외국 뮤지션은 그래 본 경험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라나 델 레이는 너무 궁금해서 검색해 봤는데, 네이버에 쳤더니 나오지가 않는다. 영어 인터뷰를 읽고 싶은, 그 정도의 열정이 조금 더 생겼을 때 다시 찾아봐야지.
예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이게 꿈이었다. '하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하기만 하면 행복할 것 같았고, 하는 모습 자체를 꿈꿨다. 그게 하고 싶어서 나는 그 시절을 어찌 저찌 보냈나 보다. 딱히 괴롭고 힘들다는 생각 없이, 그 시절이 지나고 나면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건 맞고, 하고 싶은 일을 원없이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더 이상 하는 것 자체로는 큰 기쁨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잘하고 싶다. 나 이거 할 줄 알아, 잘할 수 있어라고 남들 앞에서 말해도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잘할 수 있다는 말과 동시에 좋아한다는 말도 하고 싶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 공공연하게 하는 것 부끄러워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이제는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일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이젠 이것저것 건드리기보다는 정말로 무엇 한 가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이것도 해 보고 싶고, 저것도 해 보고 싶고 그런 마음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얕고 넓게 이것저것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뭔가 한 가지를 시작하면 오래 할 줄 알듯이, 좋아하는 것도 일단 시작하면 오래 가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뭐든지. 사람을 오래 좋아하는 게 제일 힘들어, 이렇게 생각했는데 사실은 사람만큼 오래 좋아하는 게 어디 있나 싶었다. 일단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경우가 있나, 생각했는데 또 바로 떠올라 버렸다.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던 것도 같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문득문득 떠올라 내 일상에 찾아 오는데, 막상 보자고 말하기엔 이상한 사이가 되어 버리기도 했지. 그렇지만 문득 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게 흔들리는 거라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럴 때가 있다. 오래 좋아하는 것을 미워했지만,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게 생각보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