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처음이란 불안하지, 그래서 아름답지 '비긴 어게인'

호에호 2017. 7. 10. 12:12

왜일까, 음악 프로그램은 끌리지가 않더라

 음악 감상이 취미라고 말하면, 얼마나 진부하게 들리는지 안다. 내세울 만한 신선한 취미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음악을 듣는 것만큼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진부해도 어쩌랴,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음악 감상이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좋아하는 것은 많지만, '정말' 좋아한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몇 되지 않는다. 그 몇 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음악이다. 매일같이 신보를 확인하고, 온종일 음악을 듣고, 마음에 드는 가사와 앨범 소개글은 필사하고, 뮤지션 sns도 팔로우하고, 공연도 보러 가고, 공연 영상도 찾아 보고. 뭐 대단한 것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듯 음악을 좋아하는 게 단순히 음악을 듣는 행위로 그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음악 프로그램 보는 것도 좋아하겠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 듀엣 프로그램, 음악 방송 등 컨셉도 여러 가지가 있고, 화제가 된 프로그램도 많았으니까.

 

 그렇지만 왜일까, 음악 프로그램은 끌리지가 않더라.

 

 TV를 통해 노래 부르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는 게 지루했다. 좋아하는 노래라면 계속 보고 있었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가 아니라면 늘 채널을 바꾸곤 했다.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온전히 음악만을 들은 적은 별로 없었던 탓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음악을 듣는 건 어색한 일이었다. 음악을 들을 때, 대중 교통을 타거나 일기를 쓰거나 공부를 하는 등 어떤 일을 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때로는 좋아하는 앨범을 듣고 싶어서 일기를 쓸 만큼. 음악이 주가 되고, 다른 활동이 부수적인 것이 되는 한이 있어도 음악을 들을 때에는 다른 행위를 같이 해야 했다. 그런 나에게 딱히 눈에 들어오는 움직임 없이, 이미 아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음악 프로그램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 게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컨셉이 신선하거나, 좋아하는 뮤지션이 나올 때에는 그 프로그램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몇 번 시청하지도 않고 흥미를 잃는 게 대다수였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비긴 어게인을 접했을 때도 그랬다. 이미 한국에서는 인정 받는 베테랑 뮤지션들이 낯선 나라로 떠나 버스킹을 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흥미롭긴 했지만, 과연 재미있을까 싶었다. 비긴 어게인의 첫 인상은 딱 그 정도였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봤다. 솔직히 말하면 비긴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다가, 효리네 민박을 시청하고 나니 비긴 어게인을 한다고 해서. 컨셉이 흥미롭길래 계속 이어서 시청했던 것뿐이다. 게다가 믿고 듣는 뮤지션인 것은 사실이지만, 유희열, 윤도현, 이소라라는 뮤지션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큰 애착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이소라의 노래 중 좋아하는 노래가 많고, 반복재생해서 들은 노래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 세 뮤지션이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주 내 취향에 맞았던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주 좋아하는 뮤지션이 출연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노홍철의 개그 코드와 맞는 것도 아닌데. 다른 음악 프로그램들처럼 노래 부르는 장면이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평소 같았으면 채널을 돌리고도 남았을 이 프로그램을 자꾸 보게 되더라. 처음 한두 번은 우연이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방송 시간을 기다리다가 TV를 틀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면서 시청하는 게 아니라, 이 프로그램만을 진득하게 보게 되었다.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얼마 전 끝나 버렸는데,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좋아하는 음악 프로그램이 생긴 것이다.

 

 

 비긴 어게인의 매력 1, 버스킹

 개인적으로 음악적 재능만 타고났다면, 기타 하나 들고 다니면서 어디서나 버스킹을 하고, 작은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다. 내 음악을 좋아해 주는 적당한 수의 관객만 있다면, 음악을 부르면서 내 자신이 행복하고, 그 음악이 내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어느 정도의 타인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기에,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구체적으로 상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버스킹은 나에게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낭만적인 행위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버스킹이라는 소재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버스킹은 어설프다. 장소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관객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바람이 갑자기 불 수도 있고, 소나기가 내릴 수도 있고,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돌발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버스킹 무대를 공들여 준비했다 하더라도, 갑자기 비가 오면 철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은 음향 장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 뿐만 아니라 어떤 관객이, 얼마나 올지도 알 수가 없다. 어떤 관객이 오는지 파악이 되어야 그들에 취향에 맞는 셋리스트를 정하기도 수월할 텐데. 관객이 아예 없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여러 모로 버스킹은 준비되어 있지 않고, 어설프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자유롭고 매력적이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음악을 들어 주는 관객을 만날 수도 있고, 관객이 한 명도 없는 날이 있는가 하면 관객이 갑작스레 몰려서 환호성을 지를지도 모른다. 어느 때보다 관객과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칭찬을 듣게 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렇게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좋아해 주는구나, 우리의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해할 수 있구나,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생생하게 실감하게 될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나름의 대처를 하다 보면, 그 결과가 좋았든 나빴든 어느 순간의 추억으로 자리할지도 모르고, 그렇게 차차 경험이 쌓이면서 능수능란한 버스커이자, 뮤지션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긴 어게인은 그러한 버스킹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비가 와서 갑작스럽게 버스킹을 못 하게 되고, 마이크도 없는 골웨이의 펍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이 관객들이 이런 상황에서 우리 노래를 과연 좋아해 줄까, 그 어떠한 확신도 없는 상태다. 그러나 결국에 관객들은 그들의 공연에 박수를 끊임없이 보내고, 앵콜을 요청하고, 눈을 마주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가게 밖까지 따라 나와 칭찬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어떤 것도 예상할 수 없고, 어떤 것도 제대로 정해져 있지 않은 버스킹이었기에, 성공적인 공연에 대한 감흥은 배가 되어 다가온다.

 

 그들이 버스킹 준비를 위해 밤을 새 가며 연습하고, 논의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버스킹할 자리를 물색하고, 결국 첫 번째 버스킹에 도전하는, 그 모든 과정을 시청자들은 함께한다. 시청자들은 뮤지션의 입장에 감정이입하여 함께 마음 졸이고, 긴장하다가도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는 관객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음악에 감탄한다. 뮤지션이 되었다, 관객이 되었다 시시때때로 포지션을 바꾸며 버스킹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 것이 비긴 어게인의 첫 번째 매력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