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들/책

조르바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

호에호 2017. 6. 30. 22:08

꺼져 가는 불가에 홀로 앉아 나는 조르바가 한 말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의미가 풍부하고 포근한 흙 냄새가 나는 말들이었다. 그 말들은 그의 존재 깊숙이에서 나왔고 그래서 아직 사람의 온기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의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들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거의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것이었다.

가끔 글을 쓰고 말을 할 때 그런 생각을 한다.

"이게 머리로만 아는 것처럼, 혹은 머리로만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 때문에 아직까지는 나의 것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내놓지는 못하겠다. 두목이 조르바를 부러워했던 것처럼, 나 역시 조르바가 참 많이 부러웠다. 그의 인생을 통틀어 묻어 나오는 삶의 깨달음이기에, 그게 느껴지는 말들이기에, 상대에게도 묵직하게 가 닿기에. 어떻게 하면 저런 무게를 지니고, 저런 온기를 지닌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조급해 하지도 않고, 딱히 의도를 하지도 않고, 인생을 살아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저런 말을 상대에게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는데. 꼰대 같이 "나는 이랬으니까 너는 이래야 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르바처럼 자기 속에서 나온 이야기를, 그렇기에 온기를 담은 이야기를 유쾌하게 건넬 수 있을 때. 그제야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어른이 되고 싶고.

 

사실 나의 선천적인 성격을 본다면, 조르바 특유의 모습을 지닐 수 있을 리 만무하지만. 나는 나의 식대로, 나의 온기를 담은 사람이 되었으면. 적어도 인생을 좀 더 살아가다 보면, 종이에 불과한 말만 내뱉는 사람에서 멈추지 않았으면.

 

PS. 내가 쓴 글을 읽다 보며 떠오른 것은, 꿈의 제인의 제인. 제인은 온기를 품은 사람. 자신의 삶이 묻어 있는, 온기를 품은 위로와 조언을 건네는 사람. 그렇다 해서 매사에 진지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유쾌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유쾌한 사람. 나도 울고 싶고 너도 울고 싶은 상황인 걸 너도 나도 잘 알고 있는데, 그 순간마저도 너를 웃게끔 만드는 사람. 사실 꿈의 제인을 보면서, 나도 제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제인 너무 좋아 ㅠㅠ 나에게도 제인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ㅠㅠ 이런 생각만 했지. 제인 같은 사람이 되기가 너무나 어려워서, 너무 아득해서 꿈도 꾸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을 품어 주겠다는 생각보다는 누구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그랬던 걸까. 개인적으로는 생각-> 포기의 과정이 아니라, 아예 생각도 안 했던 것이기에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제인도, 구교환 배우님도 둘 다 멋있는 사람.

 

 

행운의 신은 눈이 멀었다고 그럽디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사람들 속을 달려 간다니. 거기에 부딪친 사람을 우리는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지요. 그런 게 행운이라니 정말 웃기잖아요? 우리는 그 따위 것 없어도 되잖아요, 두목?

이래서 조르바를 좋아했다. 조르바의 언행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매우매우 많았지만 그건 조르바가 살았던 시대를 고려하여 그렇다 치고. 행운을 얻는다는 것, 재수 좋다는 것, 그게 겨우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행운의 신과 부딪쳐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그거 정말 별 거 아니고, 웃긴 일 아니냐고 깔깔대는 모양이라니. 그리고 그거 참 별 거 아닌 일이니까, 나한테 찾아 와 주면 안 되나, 하고 구질구질한 미련을 남겨 두는 게 아니라 그런 것 따위 없어도 우리는 괜찮지 않냐, 하는 뻔뻔스러움이 가미된 자신감이란.

 

이런 사람을 만나면, 파트너로 두면 참 행복하겠다. 인생 망한 것 같은 순간에도, 나락으로 떨어져 다시 기어 나가면 된다 해도 기어 나갈 기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순간에도, 이런 말 한 마디면 스르르 녹아 어쩔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겠다. 이런 사람이라면 그 작은 웃음의 불씨를 꺼지게 하지 않고, 다시 살릴 능력도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다시금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심각한 상황일수록 어이 없고 실없는 소리가 먹힐 때가 있다. 누가 모를까,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심각성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파악할 힘도, 극복할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라면 세상 모르는 척, 저렇게 한 마디 던져 전환시키는 것도 좋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우리의 인생이란 얼마나 잔혹한 신비인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만났다가는 헤어지는데. 우리의 눈은 하릴 없이 사랑하던 사람의 얼굴 모습, 몸매와 몸짓을 붙잡으려 애쓰니. 부질 없어라, 몇 년만 흘러도 그 눈이 검었던지 푸르렀던지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것을.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우연하고, 스쳐 지나듯이 시작된 만남이라도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평생을 가는 기억으로 남기도 하고. 오래 가고, 쉽게 끊기지 않을 것 같던 인연도 어느 순간 멀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인연은 예상했던 대로, 마음 먹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흥미롭기 그지 없다. 그리고 그게 지나간 인연이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연이든 과거의 기억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사실 나의 경우는 많은 부분에 있어 나를 바닥까지 끌어 내리고 괴롭게 했던 일들은, 내가 왜 그런 별 거 아닌 일에 그런 감정까지 느꼈지, 하고 가볍게 넘겨 버리며, 좋았던 일들은 그 때의 행복했던 감정을 생생하게, 끊임없이 되살려 내면서 잊지 않고 잡아 두는 듯하다. 좋았던 기억을 더 좋았던 것으로 미화한다기보다는, 안 좋았던 기억을, 그 때 느꼈던 감정의 감각을 차차 잊어 가면서 좋았던 기억이 더 강렬해지고, 그래서 미화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게 아닐까.

 

사실 그 감정은 남아 있지만, 감각은 희미해져 간다. 기억하고 있는 그 장면이, 감각이 내가 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그렇기에 결국엔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내가 보았던 건 내가 아니라 상대였기에, 그리고 그게 좋았기에 상대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기억에 남는 것은, 상대를 좋아할 때 느꼈던 나의 감정뿐. 내가 좋아했던 상대와 관련된 모든 감각은 흐릿하며 이게 실제 그랬는지, 내 기억 속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때로는 심지어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잘 모르게 된다. 그렇다 보니, 결국 내가 좋아했던 건 상대를 좋아하면서 느꼈던 나의 행복감이었나,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고.

 

그러나 다시 접했을 때, 생생하게 모든 감각이 잠시나마 되살아 났던 것을 보면, 그건 또 아니고 단순히 기억의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 결국 아무리 붙잡고,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놓치 않고 포착하려고, 기억하려고 애써도 부질없는 것이다. 그러나 부질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놓지 못하고 애쓴다는 점에서, 그런 역설적인 존재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매혹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PS. 지금은 좋지 않았던 기억을 잊어 가면서 과거가 더 괜찮아 보이는 게 아니라, 좋았던 기억을 더 좋았던 기억으로 왜곡하기에 과거가 미화되는 것이라고 생각. 힘든 순간이나 기쁜 순간이나 아무 생각 없는 순간이나 의지하게 되는 건 행복했던 기억이다. 의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행복하고 강렬했던 기억은 자꾸 불쑥불쑥 튀어 나오기 마련이니까. 기왕 떠오르는 거, 더 좋았던 기억으로 만들어서 떠오른 순간의, 현재의 나를 행복하게 만들자 이런 것 아닐까. 모르겠다 보편적인 건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는, 좋았던 기억은 더 좋았던 기억으로 바꾸는 게 분명해. 시간이 지나가면서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웬만하면 더 좋았던 멘트로 분위기로 바꿔 버린다. 어쩌면 그게 사실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어떤 말을 뱉었는지 적어 놓지 않기에 사실이 아닌지 맞는지 확인할 수는 없고. 그냥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보다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좋아했던 순간들을, 좋아했던 사람들을, 좋아했던 것들을 오래오래 품고 좋아하기로 했다. 더 좋아하면 뭐 어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