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들/책

조르바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

호에호 2017. 6. 30. 21:34

법이 명하는 바를 자진해서 행하라고. 필연에 순응하고, 불가피한 것들은 자의로 행한 것이 되게 바꾸라고.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해방의 길일 것이다. 서글픈 방법이지만 다른 방법은 없다.

 

하지만 반항은 어떠한가? <필연>을 무찌르고, 외부의 법칙이 내부의 법칙을 따르게 만드려 드는, 인간의 저 오연하고도 돈키호테적인 반발은 어떠한가 말이다. 그래서 현재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비인간적인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자기만의 마음의 법칙을 따라 현 세계를 창조하려 든다면, 현재의 세계보다 더 순수하고 더 선하고 더 도덕적인 신세계를 창조하려 든다면?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자신의 삶의 언어로, 투박하게 자신이 느낀 바,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는 조르바가 있고, 그런 조르바를 지켜 보면서 그 동안 자신이 생각해 왔던 것에 있어 지각 변동을 느끼는 두목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르바의 언어가 좋았지만, 마치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고 의문을 품게 되는 두목의 글을 읽는 것도 너무나 좋았다.

 

반항하고 싶다, 그것까진 아니었지만 그냥 모든 것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무모하다, 싶은 행동이라 하더라도 때로는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싶었고, 혹시나, 하는 희망을 믿고 싶었다. 현실 속을 살더라도 마음 속에는 늘 이상을 품고 살고 싶었다.

 

조르바는 그런 책이었다. 사람들은 마음 속에 늘 그런 열망을 지니고 살지만, 결국에는 순응해야 한다고. 그게 맞는 것이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다시 일상으로 뛰어 든다. 그런 사람들에게, 뭔가 꺼져 있는 불씨에 다시 불을 붙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책이었다. 맞다. 조르바는 자유다. 거의 이 문장은 이 책에서 가장 좋은 문장이었다고 뽑아도 손색 없을 만큼 좋았다.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를 보면, '나는 오늘 이 순간만 살아요'라고 늘 말하던 빠담빠담의 양갈칠이 생각나곤 한다. 사람들이 양강칠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에도, 늘 생각했던 것은 '나라면, 지나처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게 강칠을 사랑하지 못할 텐데.'였다. 물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놓치면, 두고 두고, 어쩌면 평생을 걸고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리적거리는 그 모든 것을 잊은 채, 그 사람을 눈 앞에 둔 순간에는 사랑에만 열중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부러웠다. 온 세상에 둘 밖에 없는 양 사랑하고, 다른 일 다른 사람은 모두 제쳐 놓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당장 실천에 옮기는 모습이. 아무래도 빠담빠담에는 사랑과 관련된 게 컸다면, 조르바는 인생과 관련되었다는 느낌이 컸기에, 보다 강렬했고, 강철과는 다르게 이렇게 인생을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면 얼마나 단순한가. 머리 아플 일은 줄어들고, 대신에 인생에 보다 충실하게, 매 순간에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 골치 아프게 고민하는 데에 쓸 에너지를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 쏟아 부으라고, 조르바가 단호하게 말해 주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또 망설이고 고민하겠지. 마치 두목이 그러는 것처럼. 그러나 완전히 타이밍을 놓칠 때까지 멍청하게 망설이지만 않으면 된다. 망설임을 버리지 못한다고 다시 나를 자학하며 에너지를 소진할 필요는 없으니까.

 

인생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사는 것. 그것도, 현재를,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채우면, 그게 전부다. 망설이게 될 때는, 내 자신에게 조르바처럼 물어보면 된다.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냐고, 그리고 너는 지금 어떠냐고. 그 답을 내리면 어느 새 마음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결정을 내렸을 게 분명하다.

 

PS. 1년 전에 썼던 글이라, 지금과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욕심이 없다기보다는 여러 곳에 조금 조금씩 욕심을 품고 사람인 것 같다. 하나에 올인해서 욕심을 가지면 그 욕심이 커 보이는데, 나는 여러 곳에 하고 싶은 것들이 많고, 꿈꾸는 것들이 많으니까. 아마 그것들을 다 합치면, 적은 곳에 욕심을 크게 품은 사람들의 크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여전히, 한 사람과의 사랑 하나에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지는 못할 것 같다. 사랑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이긴 하지만, 빠담빠담의 경우에는 강칠과의 사랑을 택하면, 많은 다른 관계와는 틀어질 게 분명하니까. 그것을 감수하는 게 나에겐 너무나 괴로운 과정이니까.

 

그래서 사실 망설일 것 같긴 한데, 어쩌면 결국엔 강칠을 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전의 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강칠을 택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나는 망설이다가 강칠을 택할 것이라 생각하다니.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저렇게 모든 것과 맞바꿀 만큼 고민하게끔 하는 사람이라면, 다시는 찾아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강렬한 사랑이자 사람일 테니까. 결국 그 강렬함에 마음을 빼앗겨 버릴 것 같다.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일지도 몰라도.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순간도 오겠지만, 그래도 그 반짝거리는 기억을 얻었음에 결국엔 잘한 선택이야, 라고 말하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강렬했던 사람이라면, 과연 그 빈 자리를 견딜 수 있을까. 혼자를 좋아하는 것과, 사람의 빈 자리를 견디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일이구나, 느낀다. 혼자를 잘 견딜 수 있고, 그것을 이젠 즐기기까지 하지만, 나는 사람의 빈 자리를 잘 견디는 사람은 아니구나, 배우고 있다. 지금 곁에 있지 않고, 마음도 곁에 있지 않고. 그런 빈 자리는 그래도 상상을 하고, 소식을 접하며 채울 수 있는데, 아예 존재하지 않는 빈 자리를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으며 잘 채워나갈 수 있을까.

 

조르바, 사람이란 누구나 뱃속에 악마 몇 마리쯤은 갖고 있으니 그건 걱정 마세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지요. 중요한 건, 이 악마들의 최종 목적이 같아야 한다는 거죠. 가는 방법은 다르더라도.

굳이 악마라는 표현을 쓸 것은 없지만, 인간 내에는 수많은 다른 특성들이 존재한다. 이 사람이 아는 나와 저 사람이 아는 나는 다를 것이고, 나에 대해 아무리 많은 특징을 알고 있는 사람도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모습까지 남김없이 알기란 불가능하다. 아마 나 자신도 완벽히 모르겠지. 몰랐던 녀석이 툭 튀어 나오기도 하고,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하니까. 그래, 그런 것들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은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두목의 말대로 최종적인 하나의 목표를 향해야 한다는 것. 조르바도 그 목표가 도대체 무엇이냐며 도움을 요청했고, 두목 역시 그렇게 어려운 것을 어찌 알겠느냐고 답했었지.

 

나 역시 궁금했다. 그런데 잘 모르겠더라.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모든 특성들은 무엇을 향한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어떤 때에는 어떤 것이 더 활성화되고 어떤 때에는 어떤 것이 억제되고. 때로는 동시에 힘을 합치기도 하고 그럴까. 갑자기 인사이드 아웃이 연상된다. 결국 그 모든 감정들 역시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이런저런 위험을 무릅쓰고 그 여정을 떠났던 것이니까. 내 속의 악마들도 나의 행복이라는 최종적인 목표를 가지고 때로는 실수도 하고 실패를 하지만, 결국엔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나도 조르바처럼, 그들이 하자는 대로, 가자는 대로 그저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걸까.

 

PS. 사실 나는 잘 모르는 게 아니라, 그런 최종 목표를 설정한 적이 없는 게 맞다. 그런 최종 목표를 부여받고 태어난 게 아니라면, 그런 목표가 아마 없을 거야. 이 목표는 미래에 하고 싶은 일도 아닐 거고, 어떤 이상향적인 인간의 모습도 아닐 거고. 무엇이 되어야 할까. 다시 생각해 보니, 최종적인 목표가 단 한 가지는 아니어도 되겠다. 이런 면에서는 이렇게, 또 다른 면에서는 이렇게. 여러 면에서 최종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목표를 생각하면 되는 거고, 그 목표가 최종이라고 해서 변화해서는 안 되는, 그런 고정된 목표일 필요도 없겠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가짓수가 늘어나고 더욱 복잡해지는 게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것일 테다. 매 순간에, 지금 정해 놓은 최종 목표를 향해 여러 특성들을 활용하면 되는 것일 뿐. 그렇게 생각하니, 최종 목표를 나름대로 정해 놓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잘 활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편인 것 같고, 의식적인 노력 덕분에 조금씩은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고.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자연스러운 나의 특성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겠지.